일본이 세계최대의 채권국가가 된것은 85년이었다. 걸프전쟁에서의 압도적인 승리로 미국의 군사력과 정치적 지도력이 경쟁자를 허용하지 않게됐다고 하지만,그 막강한 군사력도 일본의 재정적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정부의 방대한 재정적자를 메워주는 「큰손」도 역시 일본의 「엔」이다.지난날 아시아를 짓밟고,결국 진주만 기습의 죄악을 저질렀기 때문에 숨을 죽여온 일본의 이제 그 정치적 야심을 펴기 시작했다. 작년 4월말부터 아시아 각국을 돌고있는 가이후(해부) 수상의 행적에서 우리는 이러한 일본의 야심을 읽을 수 있다. 지난 10일부터 13일에 걸친 중국방문은 가이후 수상으로서는 지난해 서남아 4개국 순방이래 지난 1월의 한국방문까지 합쳐 네번째 아시아 순방여행이 된다.
일본은 그동안의 「정치적 저자세」를 벗어던지고,국제무대에서 국력에 어울리는 지도적 강국으로 행세하기위한 정지작업에 나선것이 확실하다. 물론 가이후수상은 이 일련의 순방외교에서 일본이 「군사 대국」이 될 생각은 없다고 거듭 강조해왔다.
그러나 그는 지난 5월 싱가포르에서 『경제면뿐만 아니라 정치면에서도 지역문제를 비롯,폭넓은 국제평화유지에 공헌하고 싶다』고 실토했었다.
이번 중국방문은 가이후수상이 노리는 일본의 아시아주도권 구상에 가장 중요한 대목일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닷새동안의 방문에서 89년 천안문 사건으로 서방측의 제재를 받고있는 중국에 총 8천억엔의 제3차 차관공여를 약속했고,『중국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돼서는 안되며,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확보하는데는 일본·중국이 손잡지 않으면 안된다』고 꽃다발을 안겼다.
그는 그대신 「자위대 해외파병」을 공식언급함으로써 「묵시적 양해」를 얻었다고 일본의 언론들은 말하고 있다. 중국측의 「묵묵부답」은 묵시적 양해일 수도 있고,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일본이 자위대 해외파병 정책결정에 필수적인 과정 하나를 마친 셈이다.
우리는 아시아에서의 정치적 주도권을 노리는 이러한 일본의 움직임을 한편에서 불가피한 현실로 인식하면서도,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또 하나의 현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적어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인접국에 대해 저지른 과거의 죄업을 청산하지 않은채,또다시 정치적 주도권을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쪽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일본이 「과거청산」없이 주도권을 노린다면 아시아에 또 하나의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않을까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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