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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불법취업 “기승”/공원·잡역부등 1만여명 추산(현장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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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불법취업 “기승”/공원·잡역부등 1만여명 추산(현장출동)

입력
1991.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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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태등 현지조직망 갖추고 집단유입/적발땐 강제출국 당하면 그만/업주 “벌금만”… 단속실효 없어필리핀 마닐라시에서 국민학교 교사로 있던 제니·본아오양(22)은 지난 3월25일 『월급을 다섯배 더 받게 해주겠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3개월짜리 관광비자로 김포공항에 내린 제니양은 소개인인 같은 필리핀인 브레실다씨(38·여)를 만나 서울 중구 남산동 아스토리아호텔뒤편 싸구려 여관에 투숙,다른 필린핀여자 5명과 함께 일자리나기를 기다렸다.

다음날 제니양은 황사장(47세가량)이란 한국인 알선업자에게 넘겨졌고 브레실다씨는 제니양이 필리핀에서 마련해온 1천달러를 소개비로 받아갔다.

황사장은 제니양을 곧바로 용산구 후암동 모봉제공장에 데리고 가 다림질공으로 취직시켜 준뒤 업주로부터 소개비 20만원을 챙겼다.

제니양은 첫 월급으로 20만원을 받았고 일이 조금 손에 익은뒤부터는 5만원을 올려 받으며 공장에서 먹고 자고 5개월을 일하다 얼마전 불법취업으로 적발돼 강제출국 당했다.

브레실다씨도 함께 쫓겨났고 봉제공장 주인 김모씨(45)는 벌금 55만원을 물었으나 「주먹코」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외국인 취업 브로커 황사장은 오리무중이다.

선진국의 문턱에는 아직 멀기만한 우리나라가 전반적인 경제사정이나 국내 고용구조와는 걸맞지 않게 「인력수입국」이 돼버린지는 이미 오래다.

지난 88년 불법취업으로 적발된 외국인은 2백57명이었으나 89년에는 75%가 늘어난 4백50명으로 집계됐으며,이들을 고용한 업주는 48명에서 1백3명으로 2백14%나 급증했다.

지난해에는 불법취업 외국인이 무려 10배나 늘어난 1천1백98명이나 적발됐으며 법무부와 업계는 이같은 적발건수로 미루어 현재 1만여명이 국내에 취업중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80년대초만해도 외국인 취업은 국내기업체에 진출한 미국 유럽 등의 고급인력이나 외국어학원 강사 등이 대부분이었으나 이제 필리핀,태국,파키스탄,미얀마,네팔,스리랑카 등 동남아시아 저개발국 사람들이 불법체류하며 닥치는 대로 잡역을 맡아하는 추세로 변했다.

무용수·악사 등 연예인들을 국내에 조달하던 이른바 프로덕션을 통해 한두명씩 섞여 들어오던 이들은 한국과 현지에 조직망을 갖춘 브로커들에 의해 집단유입되는 실정이다.

이들 자국보다 2∼5배가 높은 임금을 노리고 15일간의 일시 상륙허가(무비자)나 단기관광비자를 받아 국내에 들어온뒤 브로커들의 소개선을 따라 공장으로 잠입,체류기간을 넘기면서 일을 한다.

직종은 국내에서 구인난에 시달리는 봉제·피혁·건설잡역 등은 물론 가정부 식당종업원 우유배달 등 거의 모든 단순노동에 걸쳐있다.

이들은 월급을 암달러로 바꿔 은행을 통해 고향에 송금하다가 체류기간이 만료되면 알선책 또는 귀국자들을 통해 인편으로 보낸다.

불법취업으로 적발되더라도 강제출국 조치를 당하면 그만이라 두려움도 없고,업주도 50만∼1백만원을 벌금으로 내는 정도에 그쳐 실질적인 단속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현행 출입국관리법에는 입국목적외의 활동은 법무부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돼 있고 이를 어길 경우 3년이하의 징역이나 3백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있으나 해당국가와의 관계 등을 고려,엄격히 적용하지 못하고 강제 출국시키는게 고작이다.

불법체류자를 고용한 업주들도 1백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면 그만이라 실효성이 없으며,브로커들은 직업안정법 위반으로 처벌이 가능하지만 좀체 꼬리가 잡히지 않는다.

◎말잘듣고 싼맛에 고용급증/단속 두려워 외출기피 “신머슴”/비 가정부,가정교사역도 “인기”/인력시장까지 생겨나/우리 영세민 생계위협

서울 성동구 성수동 T섬유공장에선 지난해 9월부터 최근까지 스리랑카인 6명과 필리핀인 2명이 일해왔다.

사장 박모씨(50)가 1인당 20만원씩 주고 브로커로부터 넘겨받은 이들은 하루 10시간정도를 근무하고 공장내 기숙사에서 숙식하며 월 30만원씩을 받았다.

이들은 출입국관리국 단속반 등에 적발돼 쫓겨나는 것을 두려워해 월급을 이태원 등지에서 암달러로 바꿔 고향에 송금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일절 외출도 하지않은채 현대판 머슴생활을 감수해야 했다.

이들의 작업장은 불과 30여평 남짓한 지하실에 냉난방 장치는 물론 환풍시설 조차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굴속같은 곳. 소음과 먼지가 꽉들어차 국내 근로자들이 기피하는 열악한 작업환경속에서 국내인의 절반가량의 임금만 받고 일하던 이들중 스리랑카인 4명은 단속반에 적발되자 공장에 여권까지 팽개쳐두고 달아나 국제 미아가 돼버렸다.

사장 박씨는 『노임이 절반밖에 안들고 퇴직금을 줄 필요도 없는데다 말을 잘들어 요즘같은 구인난에 누군들 고용하지 않겠느냐』고 항변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Q피혁에도 현재 미얀마인 2명이 월 24만원을 받으며 잡역부로 취업중이다.

영어도 못해 의사소통능력 조차 없는 이들은 그저 『돈많이 벌어서 좋다』며 쫓겨날때 쫓겨나더라도 그만이라는 표정으로 공장생활을 견디고 있다.

화공약품 냄새가 코를 찌르는 지하공장에서 땟국물이 흐르는 단벌 T셔츠를 걸친채 베니어판 작업대에 매달려 가죽을 재단하고 있는 이들은 고향보다 추운날씨 때문에 감기가 자주걸려 고생하지만 표정은 밝다. 『이곳에서 한 1년만 돈을 모아가면 잘 살수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이들은 하루 10시간 이상 매달려있는 작업대서 잠과 식사를 모두 해결하는데 침구라야 초라한 이불한채 뿐이고 식사는 쌀밥에 매운김치와 밑반찬 몇가지뿐이다.

강남의 아파트촌에는 가정부에다 아이들 영어회화 가정교사 노릇까지 하는 필리핀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다목적 가정부를 데리고 있는 최모씨(41·여·강남구 대치동)는 『필리핀 가정부를 두고있던 친구의 소개로 30살난 대학출신 여자를 고용하게 됐다』며 『월 2백달러를 주면 부엌일부터 애들 공부지도까지 못하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에 취업하려는 외국인들이 무한정인데다 국내의 수요도 점차 늘어나면서 남산동 아스토리아호텔 뒤편,이태원 크라운호텔 주변,강남구 삼성동 항공화물 터미널부근 등의 싸구려 여관촌에는 이들을 알선하는 인력시장까지 생겨나고 있다.

관광목적으로 입국한 외국인중 돈이 떨어진 사람들까지 이곳을 이용해 잠깐동안 취업을 해 출국경비를 조달,일본 등으로 건너가기도 한다.

최근에는 30일간의 친척방문 초청장을 갖고 들어와 장기 체류하면서 돈벌이에 나서는 중국교포들까지 인력시장에 끼여들고 있다.

중국교포들은 처음 한약재 장사로 재미를 보다가 약재반입이 규제되자 날품팔이로 나서기도 한다.

불법취업 외국인중엔 짭짤하게 목돈을 장만해 떠나는 사람들도 있지만 빈털터리로 쫓겨나는 경우도 적지않다.

의료보험과 산재혜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걸리면 월급을 치료비로 써버리고 소개비만 뜯긴채 폐인 신세가 되기 일쑤다.

최근에는 한국취업을 미끼로 외국 여성들을 국내 사창가에 팔아넘기는 국제 인신매매 사례까지 등장했다.

지난 5월 서울지검 동부지청에 구속된 박미자씨(36·여)는 필리핀 현지브로커에게 필리핀 여성 7명을 『한국공장에 취업시켜 주겠다』고 모집해 오도록 한뒤 1인당 80만원씩 받고 강동구 천호동 속칭 「텍사스촌」에 팔아 넘긴 것으로 밝혀졌었다.

외국인의 불법취업이 빚어내는 문제가 많지만 이들이 우리사회 빈곤층의 생계영역을 잠식하는 것을 방치해둘 경우 나타날 사회적 폐해는 심각하다.

이미 동남아시아의 값싼인력에 밀려난 우리 인력은 상대적 고임금을 찾아 일본 등에 불법취업을 하는 국제적 불법취업의 악순환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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