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임금인상의 사회적 계약/이천표 서울대교수(목요진단)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임금인상의 사회적 계약/이천표 서울대교수(목요진단)

입력
1991.08.08 00:00
0 0

지난 2,3년 부동산가격을 비롯한 각종 주요 재화의 가격이 한단계 다시 뛰어 오름에 따라 사람들은 새삼 상당한 불만을 갖게 되었다. 소득분배가 나빠졌고 상대적 빈곤이 심화된 것을 비탄해 하면서,별다른 재산소득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들은 다시 임금인상을 요구하게 되었다.한편 기업인들은 임금이 너무 올라 기업하기 힘든데 더 이상의 임금인상은 정말 큰 일이라고 고충을 털어 놓는다. 제조업부문 평균임금이 87년 11.6%,88년 19.6%,89년 25.1%,90년 20.1%나 올라 이것을 기반으로 해서는 해외시장에서 경쟁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빈약한 자원의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너무 많은 사람이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처지이다보니 근본적으로 우리는 수출을 하면서 살아갈 도리밖에 없다. 적어도 우리에게는 자급자족이라는 말은 전혀 현실성을 지니지 못하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30여년간 우리는 이른바 수출주도형 성장 전략을 택해 높은 성장을 할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수출 많이하고 수입 많이 하면서 소위 교역의 이익을 취하며 살아야할 운명이다. 그런데 최근들어 우리의 주요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것이 문제이다.

우리 수출품의 대부분은 실상 높은 수준의 기술을 써서 만든 고급품은 못된다. 따라서 이런것들을 수출하려면 가격경쟁력이 생명이다. 그런데 지난 수년간의 임금인상으로 이런 생명선이 위태롭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특히 제조업 평균임금을 미 달러화로 환산한 달러표시임금을 가지고 우리의 그것과 태국이나 중국의 그것을 비교하곤 한다.

임금을 올려주면서 많은 수출을 하고 잘 견뎌 나가도록 하는 왕도는 높은 수준의 기술을 써서 고급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실력에는 한계가 있어 단기적으로 이러한 바람직스러운 해결방안을 실제화 시킬수가 없다. 기술개발에 진력해야 하되 그것의 성과가 손에 잡히지 않는 기간동안에는 기왕의 생산방법과 기술을 써가며 연명해 갈수밖에 없고,그러다 보니 달러 표시가격이 자꾸 높아지는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달러화로 환산한 제조업 평균임금이 오른 것은 원화표시 명목임금이 오른 것과 환율이 낮아진 것의 두가지에 기인한다.

나아가 원화표시 임금이 오른 것이나 환율이 낮아진 것은 모두 우리경제가 성장했고 여러 면에서 충실해졌다는데 기인한다.

불황이 심했거나 국제수지적자가 악성이어서 외채문제에 시달리는 처지였더라면 임금이 오르지도 않았을 것이고 환율이 낮아지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30년 동안이나 고도성장을 한 나라의 임금소득자가 10년이나 20년밖에 성장하지 못한 나라의 임금소득자 보다 잘살아야함은 당연하다. 비슷한 조건에서 출발하여 우리는 태국이나 중국보다 10년내지 20년 먼저 성장을 시현해왔으니 우리근로자의 생활이 이들 나라의 근로자의 그것보다 높아야 함은 당연하다. 나아가 근로자에게는 임금이 소득의 제일 중요한 요소이므로 임금이 높아야 함은 당연하다.

실질임금이란 여러가지 방법으로 계산할수 있는 것이다. 또 달려표시 임금수준이 어떻든간에 생활수준을 나타내는데 의미가 있는 것은 실질임금이다.

그런데 우리의 실질임금이 과거나 다른 나라에 비해 30년의 고도성장에 상응하게끔 올랐느냐하고 의아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하루 일당으로 국밥을 몇그릇 먹을수 있고,한달 봉급으로 보통의 신사복을 몇벌 살수 있는가. 국민주택 규모의 집을 사는데 몇년의 소득이 소요되는가. 의식주의 기본요소 및 의료서비스,교육서비스 등으로 계산한 실질임금이 30년 고도성장에 걸맞게 개선되었다고 할수 있는가.

성장의 과실이 전체의 이름으로 유보되면 모를까 어떤 방식으로든 나누어지는 것이 현실이라면 그것은 골고루 나누어지도록 되어야 한다.

또 임금소득자에 대한 성장과실의 배분은 임금상승의 형태를 취할수 밖에 없다. 따라서 국제시장에서의 가격경쟁력의 단면만을 보고 일부에 대한 성장과실배분을 배제한다는 것은 결코 건설적이라고 할수가 없다.

결국 기술수준을 높일 수 없는 단기적 상황에서의 해결책은 중장기적으로는 성장에 걸맞는 임금을 보장하되 단기적으로는 명목임금을 올리는 것을 자제하는 사회적 계약을 도출해 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학에서의 관련해법이 동원될수 있겠으나 근본적으로는 정치적 리더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와더불어 두가지 현상적 사실이 유념되어야 한다. 첫째,환율이 낮아져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게 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경상수지 흑자를 내겠다고 너무 연연해서는 안되고 경상수지 적자를 너무 두려워해서도 안된다. 지구상의 일류 국가들중 반이상이 외채국이란 사실을 구태여 외면할 필요가 없다. 둘째,인플레이션을 경계해야 한다. 인플레이션이란 자기몫을 늘리려는 각계층에게 형식적으로는 늘어난 분배분을 가지게된듯 느끼게하나 실질적으로는 풀어야할 배분의 문제를 회피하는,일종의 사회최면의 길이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과정에서 사람들이 자기몫 찾기에 열을 올리면서 진정한 생산활동에는 소홀하게 되는면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