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설」 퍼져 규명불가피/구체물증 발견여부 초점【워싱턴=정일화특파원】 81년 1월의 미 대통령이 취임현장을 지켜본 사람이면 레이건 대통령의 취임선서가 끝난직후 이란정부가 4백44일동안 억류해 놓고있던 미국인 인질 52명을 석방한 소식을 듣고 약간은 의아해 하지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80년을 통틀어 온 미국의 관심은 이란억류 인질에 쏠려있었다. 일단의 이란과 격파들이 테헤란주재 미 대사관을 습격해 미 대사관 직원과 대사관 방문객 등을 인질로 잡고 「대마귀 미국」을 줄곧 비난해 왔던것인데 그해 있었던 카터레이건 후보간의 대통령선거도 자연히 이 인질문제가 승패의 열쇄를 쥐게 됐었다.
8월경부터는 인질이 곧 석방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카터행정부는 물론 카터재선의 운명을 여기에 걸고 인질석방에 온 정력을 쏟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질은 선거당일까지 석방되지 않았다. 대통령권좌가 레이건에게로 넘어간지 불과 1∼2분후에 인질들이 풀려나와 레이건 행정부의 출범에 오색찬란한 색종이를 뿌려졌다.
80년 선거에 레이건팀이 이란을 잡고 거래를 했다는 문제가 공식적으로 제기된 것은 지난 88년 아볼·하산·바니·사드르 전 이란대통령이 그의 자서전 「내가 말할차례이란,그 혁명과 대미 거래」(My Turn Speak:Iran,The Revolution&Secret Deals with the U.S)에서 레이건선거팀이 포로석방 지연을 위해 호메이니옹과 비밀거래를 했다고 주장하면서 부터였다.
지난 4월18일에는 카터대통령 시절 안보보좌관을 지냈던 현 미 콜럼비아대교수 게리·시크가 뉴욕 타임스여론 페이지에 『레이건 선거팀은 80년선거 당시 이란과 비밀협상을 했음이 틀입없다』는 내용의 기고문을 실어 파문을 일으켰다. 부시대통령 자신이나 말린·피츠워터 백악관 대변인은 이 기고문 내용에 대해 적어도 5∼6일 이상 질문에 대한 답변형식과 자발적으로 「음모설」에 대한 해명을 해왔다.
시크교수의 뉴욕 타임스 기고문이 나온지 얼마뒤인 5월6일 10년 이상 미국입국이 허락되지 않던 바니·사드르 전 이란대통령이 미국에 와 다시 「레이건팀의 음모설」을 주장했다.
그는 호메이니옹의 조카가 80년 봄 레이건 선거참모와 이란 종교지도자간의 회담을 스페인에게 갖도록 주선했으며 당시 레이건팀의 교섭책임자는 레이건에 의해 중앙정보국장에 임명됐던 윌리엄·케이시였다고 말했다.
이란측 대표는 아야툴라·호메이니옹의 한 측근인 호자톨리슬람·메흐디·카루비였다고 특정인을 거명하기도 했다.
바니·사드르는 그러나 구체적인 증거는 대지못했다. 당시 호메이니옹이 이끄는 혁명과격파들은 바니·사드르를 몰아내고 계획하고 있었으므로 바니·사드르는 권력핵심으로부터 멀리 따돌려져 있었고 따라서 아무도 그에게 이 사실을 직접 보고하지는 않았다는것. 바니·사드르는 결국 호멜이니파에 의해 쫓겨났고 그는 지금 10년째 프랑스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다.
바니·사드르는 대통령 재임시절 호메이니 측근에서 인질석방문제를 제기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공식외교 채널을 통해 카터행정부로부터 인질석방교섭을 받았는데 두가지 인질석방 진전상황을 비교해본 결과 이 두채널이 전혀 따러 움직이고 있다는 결론을 내게됐다고 했다.
호메이니측근은 결국 레이건팀과 손을 잡고 있었으며 그것을 모르는 카터행정부는 힘없는 바니·사드르를 주교섭상태로 하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부시대통령의 92년 재출마가 거의 확실해지면서 이 레이건 선거음모설은 다시 워싱턴 정가에 짙게 퍼지고 있다.
레이건 대통령의 러닝메이트였고 과거 중앙정보국장도 지낸바 있는 부시로서는 레이건팀이 이란 종교지도자들과 뭔가 뒷거래를 하고 있었다면 이를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이 나올만 한것이다.
민주당 인사들은 5일 의회조사위를 통해 결국 『이 소문을 깨끗이 정리』하기로 했다.
상원외교위와 하원외교위가 각각 가능한 모든 관련자의 증언,관계서류를 챙겨 어떤 결론을 내기로 한 것이다.
하원의장 토머스·폴리 상원민주당 원내총무 조지·미첼 등 민주당 지도자들의 공식요청에 의해 상하외교위의 분과위가 구성돼 곧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주말 그의 선거참모 20여명을 캠프 데이비드 산장에 불러 선거전략을 듣는 등 이미 재출마를 위한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가 있다. 그리고 그의 인기 역시 걸프전 직후보다는 떨어졌으나 여전히 74%의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얼핏보기에는 지금까지나온 여러 주장에도 불구하고 의회가 나선다해도 어떤 구체적 물증을 찾게될것 같지는 않다. 또 부시대통령의 인기가 웬만한 사건으로는 크게 떨어질 형편도 아닌듯하다. 그러나 만일 의회조사반이 결정적 증언자를 찾아낸다든지 어떤 증빙서류를 찾아낸다면 이런 외형적 지지율 같은 것은 쉽게 무너질수도 있다. 일말의 정치비리라도 있어 보이면 시간이나 권력 등과 관계없이 그 뿌리를 캐내고야 끝장을 내는 미국식 민주주의의 한 과정을 이번 의회조사를 통해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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