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을 맞아 교환방문한 서울과 시골 국민학생들의 일기에서 『서울의 고층빌딩을 시골 맑은 공기와 바꿀까』하는 구절이 있었다. 어린이들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런 간절한 꿈을 담았을까 싶어 어른된 도리에 괜히 겸연쩍어진다.어린이들이 그럴진대 어른들의 답답증이야 말할나위가 없다. 허구헌날 죽기 살기로 생활전선에서 뛰며 시달리다보면 온갖걸 훌훌 내어던지고 자연속으로 뛰어들고픈 성급한 울화가 누구에게나 수시로 치미는 것이다. 그런 울화들이 모이고 쌓여 바캉스전쟁 마저 빚고있음에 생각이 미치면 『정말 불쌍한게 사람들』이라고 탄식이 절로 나온다. 사실 20시간을 라면 끓여 먹어가며 길바닥에서 버티고서라도 바닷물에 몸한번 담가야 직성이 풀릴 정도라면 단순한 물놀이나 바캉스정도가 아니다. 차라리 골수에 사무친 한풀이요,망집이라 할만하지 않는가. 사람몸에 울화가 쌓이면 번열이 생겨나 총명을 흐릴뿐아니라 기를 상해 육신의 건강마저 해쳐진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망열이 불러들인 재앙을 오늘날 우리는 불행히도 도처에서 생생히 목격한다. 위대한 자연에 겸허히 구원을 청하자는 노릇이 무슨 한풀이 마냥 극성을 떠는 바람에 오히려 사람도 자연도 모두 망가뜨리는 어리석음을 태연히 펼쳐내고 있는것이다.
골프라는 운동만해도 그렇다. 자연에 게걸들린 사람들에게 이처럼 안성맞춤인 운동이 또 있을까 싶다. 푸른초원의 싱그러움,호쾌한 타구감과 함께 온갖 운동경기중 유일하게 제점수를 자기스스로 적어내는 정직한 신사도의 게임이라는 뿌듯함이 있는 것이다. 걷는 골프가 콜레스테롤 감소에 좋다는 외국 의학계의 연구마저 알려져 무슨 장수운동의 대명사쯤으로 받아들어져 중·상류계층에 엄청난 골프바람을 일으키고 있는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덩달아 골프장 경영도 땅투기 효과와 비싼 회원권 판매로 돈벌이가 톡톡히 보장된 것이어서 떼돈가진 사람들의 군침거리가 된지도 오래인 것이다.
산을 마구잡이로 허물고 소중한 농지마저 뒤엎고 산림마저 훼손할 정도로 날을 넘어선 망집은 급기야 홍수재앙마저 자초했다. 그런데도 환경처의 높은분은 환경파괴의 어긋난 골프장건설을 거꾸로 두둔하고만 있어 피해주민들의 송사마저 불가피해진 시점인 것이다. 오늘날 국내에서 영업중이거나 건설중인 골프장이 1백71개에 이르고 면적도 6천여만평이 넘는다. 전국택지의 11%,경기도 택지면적의 72%에 이르는 것이라고 한다.
환경단체의 고발처럼 농지와 산림을 무차별 훼손하고 재앙을 일으키지 않으면 골프경기 자체에야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매사가 정도를 벗어나니 문제인 것이다.
지난해 골프의 발상지 영국에 갔을때의 생각이 새삼 떠 오른다. 전국에 문한정 뻗어있는 그곳의 초원도 알고보면 일조량의 부족으로 작물을 키워낼 수 없기에 어쩔수없이 조성된것을 알고나서는 무언가 가슴에 와 닿는게 있었다. 양과 젖소가 깔끔하게 풀을 뜯고난 초원이 바로 자연그대로의 잔디 축구장과 골프장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그곳 바닷바람은 몸을 날릴듯 세찼고,자연 그대로의 풀길이라해야 걸맞을 골프코스 틈틈이에는 1m가 넘는 히드와 가시풀들이 황량하다고 할정도로 제멋대로 자라고 있었다. 또 1백년이 넘는다는 명문링크스의 숏홀에도 아예 티잉 그라운드와 그린만 있을뿐 나머지는 모두가 덤불러프뿐인 곳마저 있었고 거센 바닷바람을 양떼들이 피하려 이용했던 해변의 구덩이가 바로 벙커였다. 그런 골프장을 그곳 사람들은 유난히 사랑했고,있는 그대로의 거칠다시피한 환경속에서 장대한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고 벗하려는 선비정신이 깃들어 있는듯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골프장은 어떤가. 허가당국이나 업자들이 그런정신엔 관심조차 없다. 무조건 산을 깎아내리고 논밭을 파헤치고 높은 계단과 에스컬레이터 마저 설치하면서 골프장을 웬만한 자기집 안마당처럼 말끔히 다듬어 놓았다. 러프는 러프다워야 한다는 참된 골프의 정신이 우리의 삶에서도 통할진대 거센 바람과 거친황야의 말없는 교훈일랑 잊은채 홍수야 나건말건 페어웨이만 말끔히 닦아 즐기면 그만 이라는 철없는 이기심과 망집이 우리사회에 끼친 재앙은 실로엄청나다. 그래서 바캉스도 전쟁하듯 치르고 온갖 다툼도 서로의 피를 봐야 직성이 풀릴정도로 격렬하고 자기파괴적인 것이 되고있을 것이다.
얼마전 방한했던 외국의 어느 골프코스 전문가는 『자연을 살리며 사이사이 길을 내야 명코스』라고 말하고,골프장이 스포츠와 지역사회에 봉사해야 함을 유달리 강조했다고 한다. 이제라도 그처럼 알기쉽고 보편타당한 정신이 골고루 번져 온갖 번열을 일으켰던 망집에서 모두가 벗어날 때가 이슥하다는 생각이다. 「골프홍수」란 어찌보면 대자연의 섭리와 이치가 우리 사회에 보내는 마지막 경고로 여겨 마땅하기에 그런 생각이 더욱 간절해지는 것이다.
장대한 자연의 고마움과 무서움은 그같은 교훈을 우리에게 말없이 펼쳐보일뿐 결코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연을 지키고 값진교훈마저 깨치는 것은 오직 사람들의 몫인 것이다.<논설위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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