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인 해빙조류와 아울러 북한 개방여부가 관심의 초점이 되면서 동시에 떠오른 것이 북한의 핵개발 문제였다. 국제고립에 빠진 북한이 핵무기를 가질 경우 무슨 불장난을 치지 모른다는 우려가 전세계에 전염병처럼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각국은 북한에 대해 핵사찰을 철저히 해야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쳤다.소련에 이어 중국까지도 북한에 대해 국제원자력기구의 핵안전조치협정에 가입하라고 공공연히 압력을 넣기에 이르렀다. 벌떼같은 국제여론에 못이겨 결국 협정에 서명을 하면서도 북한이 끈질기게 반격용으로 들고 나온것이 바로 남한의 주한미군 핵철수 요구였다.
이렇게해서 남한의 핵문제는 이제 싫든 좋든 세계의 관심사로 등장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이 문제에 대한 한국정부의 입장은 꿀먹은 벙어리였다. 남한내의 핵존재자체에 대해 「확인도 부인도 않는」 미국정부의 태도에 동조하는 것으로 그만이었다. 독자적인 핵정책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개발저지와 함께 남한의 주한미군 핵문제가 부상하면서 더이상 한국은 침묵을 시키고 있을수 없게 되었다. 북한의 「한반도 비핵화선언」 제의(7월30일)에 대한 외무부의 「핵확산방지를 포함한 남북한 군사 및 제반문제를 남북한 당국자간에 직접 논의할 수 있을것」이라는 대응성명은 그런 측면에서 하나의 획기적인 의미를 갖는다.
지금까지 언급조차 할수없을 정도로 금기시되어온 핵문제를 미국을 제쳐두고 한국이 직접나서 북한과 논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남한의 핵문제에 대한 주도권을 미국으로부터 받았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그 의의도 결코 작지않다. 한미관계에도 커다란 진전이다.
핵문제에 관한 남북한 외교당국의 성명 교환을 계기로 남북대화도 이제 핵까지 건드리는 차원높은 경지로 진일보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한다. 앞으로 관심은 성명 교환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대화가 성사될 수 있느냐에 있다.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92년까지 채택하자고 구체적인 시기와 방법까지 제시한 북한이 남한과의 직접 논의 제의를 거부할 명분을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까지 남북간의 실질적인 협상이나 대화성사보다 제의 그 자체에 의미를 더 부여해온게 북한의 종래태도여서 사실 이번에도 얼마나 성의를 보일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핵문제가 세계여론의 초점이 되어있는 현상황에서 만일 북한이 이 문제에 대한 논의마저 거부한다면 핵사찰에 응하겠다고 서명한 북한의 진의가 의심받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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