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패 충격 철권통치로 벗어나/미 “새질서 걸림돌” 대응책부심아랍 석유장관들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신석유질서수립을 논의하고 있던 지난해 8월2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전격 침공해 중동을 전쟁의 광풍지대로 몰아넣었다.
이때부터 페르시아만사태 혹은 걸프사태로 명명된 국제적 긴장이 시작됐으며 이 사태는 결국 전쟁으로 비화돼 이라크의 패배로 일단 결말이 났다. 그러나 종전이후에도 중동을 둘러싼 혼돈은 계속되고 있다. 걸프사태의 당사자였던 쿠웨이트와 이라크는 전쟁의 상흔에 허덕이고 있으며 중동에 새로운 평화질서를 구축하려는 노력도 아직은 그 구체적 성과를 얻어내지 못하고 잇다.
즉 걸프사태는 여전히 「미완의 전쟁」으로 계속되고 있으며,중동국가들 및 미국 소련 등 관련국들에게 여러 미제들을 던져주고 있다.
▷불확실성의 중동◁
1월17일 발발한 다국적군과 이라크군간의 이른바 걸프전은 사담·후세인의 참담한 패배로 끝났다.
이를 계기로 미국은 월남전이후 상실했던 국제질서 주도능력을 회복했으며 유엔의 역할도 그 비중이 높아졌다. 이 여세를 몰아 미국 등 서방국들은 중동의 신질서를 나름대로 구축하려했다. 그러나 걸프지역의 오늘은 서방국의 기대와는 달리 불확실성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쟁 장본인인 후세인은 참패에도 불구하고 건재하고 있으며,한술더떠 가혹한 철권통치를 강화하고 있다. 그는 또 붕괴한 군사력의 절반을 회복했으며,핵개발을 계속 추진하는듯한 징후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응해 미국은 5만여명에 달하는 군사력을 여전히 이라크 인접지에 배치하고,이라크 핵시설에 대해 불가피한 경우 전면공격도 불사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쿠웨이트와 이라크는 내부적으로 전쟁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으며,특히 이라크의 방화로 불타고 있는 5백여개의 쿠웨이트 유정은 지역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다.
수십만명의 쿠르드족 난민은 후세인의 위협을 피해 이라크터키 접경지대에서 방황하고 있으며,수십만의 팔레스타인들은 쿠웨이트로부터 추방되고 있다.
이같은 현실은 걸프지역의 장래를 어둡게하고 있으며 분쟁재발의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다.
특히 후세인의 건재는 불확실성의 핵이라 할수 있다. 그는 다른 중동국가들로부터 『형제국을 침공,아랍의 영혼을 분열시켰다』는 비난을 받아 고립돼 있지만 적어도 이라크 국내에서는 군사적 패배가 정치적 패배로까지 이어지는 것을 저지하는데 성공했다.
후세인의 정치적 권위회복은 과거보다는 약화됐지만 여전히 인근 국가들에 대한 잠재럭 위협을 의미한다.
그래서 미국은 중동질서 구축의 전제조건으로 후세인 제거를 상정하고 있다. 종전당시 미국은 승전분위기에 들떠 주변상황을 지나치게 낙관했다. 후세인의 경우도 반후세인 파를 조금만 부추기면 「손안대고 후세인을 실각시킬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후세인은 철권통치로 반대파를 숙청하고 살아났으며 이때부터 미국의 새로운 딜레마가 시작됐다.
『후세인을 어떻게 제거해야 하나. 전쟁을 다시 일으켜야 하나. 아니면 차라리 살살 구슬려 공존의 틀을 만들어야 하나』 이같은 선택의 기로에서 미국은 어정쩡한 승전국이 돼있다.
후세인 제거를 위해 전쟁을 일으킨다면 핵사찰에 대한 불이행을 「뇌관」으로 삼아야하나,명분이 약할뿐 아니라 걸프전처럼 「깔끔한」 승리가 보장돼 있지도 않다.
미국의 딜레마는 그들이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중동 평화회담과 연관지어볼때 더욱 복잡해진다.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등 아랍국들의 동조로 대이스라엘 설득만 남긴 미국으로선 이라크문제의 미해결,즉 후세인과의 관계정립을 매듭짓지 않고는 중동 평화회담의 성과가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즉 천신만고끝에 어떤 중동평화안이 마련되더라도 후세인이 권토중래해 아랍의 영원한 명분인 「팔레스타인 독립」을 내걸고 미국주도의 중동재편 노력을 뒤흔들지도 모를 일이다.
이같은 중동의 정치역학적 혼돈은 전쟁이 남기고간 피폐,불신,인종간 대립과 맞물려 중동의 정치기상도를 더욱 흐리게할 전망이다.
◎쿠웨이트 아직도 전쟁후유증 심각/걸프사태 1년… 아물지않은 상처/속죄양 팔인등 추방 불만무마/민주화공세에 왕정유지 골몰
▷쿠웨이트의 후유증◁
전쟁은 승패라는 가시적 결과를 떠나 당사국의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 심각한 후유증과 충격을 던져주는게 상례이다. 쿠웨이트도 예외가 아니어서 전쟁의 후유증은 아직도 심각하다.
더구나 쿠웨이트는 종전후 보다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국가건설보다는 공고한 왕정의 유지에만 전력을 기울이고 있어 이같은 후유증은 상당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 시사주간 타임은 이를 「과거로의 복귀」라고 냉소적으로 비평하고 있다.
쿠웨이트 정부는 전쟁당시의 무력함에 대한 내부불만을 수습하기 위해 다른 아랍출신들을 속죄양으로 삼고 있다. 걸프전기간중 이라크에 동조내지 중립적인 입장을 보였던 팔레스타인 요르단 예멘 수단 출신들을 조직적으로 추방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중 탈출했던 23만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중 재입국이 허가된 경우는 한건도 없으며,쿠웨이트에 잔류한 17만명도 추방위협에 시달리거나 직장을 잃어야했다. 이들은 무료의료혜택 및 공립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했으며,모멸과 질시를 받고 있다. 이라크의 점령기간중 쿠웨이트 저항군을 도왔던 팔레스타인인조차 예외없이 냉대를 받고있어 쿠웨이트 당국의 조치가 무분별하고 비인도적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6월 이루어진 부역자에 대한 재판도 외국인 추방조치처럼 무분별 하기는 마찬가지. 당시 29명이 사형선고를 받았는데,이들중에는 단지 후세인 초상화가 그려진 T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서방연합국의 빗발치는 비난으로 이들 29명은 종신형으로 감형되긴 했지만 쿠웨이트정부의 속죄양찾기는 어디까지 갈지 예측이 어려운 상태다.
쿠웨이트왕가는 정치적 민주화를 요구하는 세력에 대해서도 편법으로 대처하고 있다. 쿠웨이트정부는 종전직후 개인부채를 탕감해주는 조치를 취한데 이어 1가구당 7만달러씩 총 1백억달러를 보조해주는 정책을 고려하는 등 내부불만을 돈으로 누그러뜨려 보려는 유화책을 쓰고 있다.
또한 알·사바 국왕은 지난 86년 폐지시킨 의회를 92년 10월까지 재개원시키겠다고 공언,반대세력의 정치적 공세를 지연시켰다.
그러나 사회일각의 불만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특히 소장파 장교들은 전쟁발발초기 잽싸고 완벽하게 탈출한 군장성들에 대한 처벌과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번 불만이 쿠데타나 항명기도로까지 연결되지는 않고 있다.
쿠웨이트왕가가 권력유지에 골몰하고 있는동안 경제상황은 공동화 현상을 맞고 있다. 총 7백32개의 유정(타임지 추산)이 방화돼 2백48개만이 진화된 상태여서 엄청난 부가 연기로 날아가고 있다. 또 외국인 추방조치로 전문인력이 부족,국가예산 편성마저 차질을 빚고있는 실정이다.
『전세계가 동참하다시피한 걸프전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다시 생각케한다』는 한 현지외교관의 지적이 쿠웨이트의 현재를 극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이라크의 특수성◁
전쟁에서 참패한 국가지도자가 권좌를 유지한 경우는 역사상 드물다. 장담하기는 때이른 감이 있지만 후세인의 권력유지는 한동안 공고할듯 하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3백∼4백%의 인플레에 시달리고,20만여명의 어린이가 기아와 질병으로 멀지않아 사망할 것으로 예측되는 참담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비극의 장본인을 이라크국민이 용인하는 이유는 이라크의 특수성에서 찾을수 있다.
후세인은 지난 68년 쿠데타이후 비밀경찰의 힘을 빌려 권력기반을 다져왔으며 종전 직후에도 반체제세력을 무자비하게 숙청함으로써 일단 정권안정을 이뤄냈다.
후세인은 또한 자신의 추종세력인 집권바트당에 대해서도 『불순세력에 오염돼 국가분단을 야기시킨다』는 이유로 대대적인 메스를 가해 내부위기를 모면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이영성기자>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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