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율 3%… 안전선 크게 미달/중지했던 화력발전소까지 재가동/87년 「대정전」 재연될까 “조마조마”일본에도 전력비상이 걸렸다.
오랜 장마가 걷히고 찜통더위가 시작되자 냉방기 가동에 소요되는 전력이 엄청나게 늘어나 전력 회사관계자들은 수은주가 치솟을 때마다 가슴을 조인다. 순간 최대수요량이 공급능력한계를 벗어나 「동경대정전」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것이다.
3천만명이 어깨를 부비며 사는 동경권에서 찌는 듯한 날 한낮에 정전이 된다면…. 냉방기가동이 중단돼 한순간 온 도시가 사우나속처럼 변하는 것은 물론,엘리베이터가 멎어 곳곳에서 비명이 일어날 것이다. 모든 사무기기가 자동화·전력화된 빌딩들의 업무는 마비상태에 빠지고,신간선철도 지하철같은 지상·지하 교통의 대동맥이 끊길 것이며,신호등 작동 중단으로 도로교통도 마비될 것이다. 또 이·착륙유도 장치의 정지로 항공기운항도 중지된다.
일본은 어느나라보다 전력공급시스템의 안정화에 신경을 써왔다. 원자력발전소 건설도 서구수준에 뒤지지않고 지형여건상 수력발전에도 혜택을 받은 나라이다. 한때 가동을 중지했던 화력발전소들도 대대적인 수리끝에 다시 발전을 시작했다. 그런데도 해마다 전력이 모자라 법석이다.
87년 7월 동경대정전을 겪은바 있는 전력회사들은 지난해 8월 뉴욕의 정전소동을 보고는 더욱 겁을 먹고 있다. 지난해 동경에서는 최고성수기인 8월에 들어서기도 전인 7월19일 순간 최대전력수요를 경험한데다,올해는 그보다 훨씬 많은 전력수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기온이 예상보다 3도정도 더 오르면 정전사태를 면할 수 없게 됩니다』 동경지방의 전력공급책임을 진 동경전력 경영진은 무엇보다 예상밖의 무더위가 제일 두렵다고 말한다.
한여름에는 총수요량의 3분1이 냉방용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일본전국에 보급된 냉방기는 무려 7천만대를 넘는다. 1억2천만 인구의 반수이상이 1인당 1대씩 가진 셈이니 그럴만도 하다.
그뿐 아니다. 하이테크 빌딩의 기능과 세계에서 가장 많다는 각종 자동판매기는 기온상승에 따라 자동적으로 전력소모를 증가시킨다. 냉방기 냉장고 컴퓨터 등이 가득찬 사무실 빌딩과 상점가는 날씨가 더워지면 전력수요가 자동적으로 늘어난다. 지하철이나 전철역 구내에는 물론 시골 버스정류장에 이르기까지 「발에 차이도록」 깔려있는 자동판매기들도 마찬가지다.
전기사업연합회의 계산에 의하면 기온이 30도를 넘어설 경우 1도가 높아질때마다 전국에서 4백만㎾ 이상의 전력수요가 늘어난다. 이중 동경지방의 증가량이 1백20만㎾. 3도가 높아지면 훗카이도(북해도)지역 최고수요전력(3백80만㎾)에 맞먹는다.
이같은 폭발적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동경전력은 해마다 동북지방 등 비교적 여유가 있는 지방전력회사들로부터 전기를 꾸어다 쓰고,다량수요가들에게 공급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넘겨왔다. 그러나 올해는 날씨 등 특별수요 폭증요인이 없다고 가정해도 전력예비율이 안전선인 8%에서 3%선으로 떨어지게 됐다고 울상이다.
지난해 여름 동경지역의 순간최대수요량은 4천8백98만㎾였다. 작년처럼 날씨가 더워진다면 올여름은 5천3백만㎾가 될 전망이다. 현재 최고공급능력은 이보다 약간 많은 5천4백50만㎾. 폐쇄된 화력발전소를 재가동시키고 지방에서 끌어다 쓰기로 한 것을 모두 합쳐도 예비율은 3%에 불과하다. 만일 예측하지 못한 수요가 생기면 공급불능상태에 빠져 대정전사태를 면할수가 없게 된다.
전력수요를 좌우하는 것은 경기 날씨 인기가 3대요소라 한다. 경기가 좋아 소비생활이 호사스러우면 그럴수밖에 없고,날씨에 좌우되는 것도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런데 인기에 좌우된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여름방학중 열리는 고교야구의 열풍을 두고 하는 말이다. 경기에 예상밖의 파란이 일어 TV중계시청률이 높아지면 전력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경기와 날씨탓은 하지 못하지만 고교야구에 파란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대하는 전력회사 사람들의 심정은 이해할만한 일본특유의 현상이다.
경제대국 일본이 여름철마다 전력난에 고심하는 것을 보면 더 편하게 더 즐겁게 살고자하는 물질문명사회의 한계를 알것같다.<동경=문창재특파원>동경=문창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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