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투쟁은 낡은 이념』이라고 고르바초프의 개막연설은 26일 끝난 소련 공산당 중앙위 전체회의를 세계 앞에 강렬하게 부가시켰었다. 그러나 이번 중앙위 전체회의는 개막연설의 강렬한 인상보다는 새로 채택한 당 강령안때문에 세계의 관심을 모으는 「정치적 사건」이다.이데올로기로부터 당면 정책에까지 걸친 강령안은 상당히 광범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우리는 소련의 개혁·개방노선이 이념적인 압중모색을 벗어나 보다 구체적인 제도화의 구도를 내놔야될 단계에 왔다는 것을 짐작하게 된다.
그 큰 줄거리를 꼽아 보자면 서방식 3권 분립과 의회민주주의,법치주의,그리고 공적소유와 사적소유가 공존하는 혼합경제를 꼽을 수 있다. 이러한 제도의 기반으로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사회주의」의 이름아래 마르크스주의와 함께 『다른 모든 인도적 사상개념』을 당의 이념적 기반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크게 보자면 이러한 강령의 대체적인 테두리는 지난해 2월에 채택된 강령안을 비롯해서 헌법의 1당 독재조항 폐기에 이르기까지,그동안 내려진 일련의 개혁조치에서 이미 드러난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채택된 강령안으로 85년 고르바초프 서기장 등장이후 진행돼온 논쟁과 정책실험이 제도적으로 구체화됐다는 데서 주목할만한 발전으로 기록될 것이다.
더구나 중앙위 전체회의를 앞두고 모스크바에서는 개혁파와 보수파가 갈라서는 무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꽤 유력했었다. 이러한 관측을 뒤엎고,새 강령안은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일부 강령 보수파의 목소리가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소련의 장래를 위해서는 원천적인 개혁밖에는 길이 없다는 「국민적 합의」를 뒤집을 수는 없음을 보여준 셈이다.
공산당이라는 이름을 벗어던지기는 어럽다해도,이로써 소련은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유럽」의 일원으로 참여할 것을 제도적으로 다짐한 셈이다.
그러나 서방세계의 가치와 정치·경제제도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닌것처럼,모스크바의 제도적 전환이 실제로 「대중정치」의 과정에서 어떻게 운영·발전될 것인가는 앞으로의 숙제로 남는다.
1당 독재를 포기하면서도 「당의 지도적 기능」은 고집하는 모스크바는 동유럽권에서도 여전히 「극좌」의 자리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이제 넓은 뜻에서의 「동방세계」는 유럽식 경쟁체제사회와 「노동계급 독재」를 고집하는 동양사회주의권으로 양분되는 역사적 전망을 보여주고 있다.
길게 볼때 역사와 시간은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에 바탕을 두는 체제편임을 모스크바의 제도적 전환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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