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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비와 G7책임/김경원칼럼(기류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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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비와 G7책임/김경원칼럼(기류조류)

입력
1991.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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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세상은 달라졌다. 불과 몇년전 까지만 해도 서방세력과 극렬하게 대결하던 소련이 이제는 G7에 경제원조를 요청하게까지 되었으니 말이다.고르바초프는 G7 런던정상 모임에 초청받기 위해 노골적으로 로비를 했을뿐만 아니라 서방선진국들로부터 원조를 얻어내기 위해 무척 노력했다. 부시 미 대통령에게는 전략무기제한협정(START)에 대한 양보까지 했다.

그런데 G7 정상들의 반응은 실밍적이었다. 기술원조 등을 약속했을뿐 소련이 기대했던 「돈」은 내놓지 않았다.

고르바초프가 빈손으로 돌아가게된데 대한 소련 국내의 반응은 친정부 언론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비판적이다.

프라우다는 런던 방문의 결과를 성공적이라고 평가했지만,서방국가들이 돈을 주지 않았다고 소련이 모욕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말은 모욕을 느낀다는 말보다 더 처참하게 들린다.

보수세력 소유즈 그룹은 고르바초프가 런던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고 비난했고 민족주의 세력 파미아트그룹은 고르바초프가 경제발전을 위해 실제 아무것도 한 일이 없이 국제자본에만 마음대로 하도록 허용했다고 공격하고 있다.

진보적 개혁주의자들도 비판적이다. 특히 고르바초프가 서방측에 제시한 개혁계획은 개혁주의자 야블린스키가 하버드대학 교수들과 함께 만든 안인데 고르바초프가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 못해서 실패했다고 불평하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지금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있다. 좌로도 우로도 갈수 없는 침체와 몰락의 계곡에 파묻혀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 계곡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깊어만 간다.

소련 GNP는 금년 상반기에도 10%나 하락했고 경제전반에 걸쳐 생산성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단지 늘어나는 것은 루블뿐이다. 임금은 계속 올라가고 정부는 생산과 상관없이 돈을 찍어내다 보니까 흔한 것은 돈뿐이다. 거기에 가격은 묶여져 있고 생산은 줄어드는데 돈은 남아돌아가니까 상점에는 물건이 나오기가 무섭게 사라리지고 만다.

그 결과로 암시장만 팽창하게 되고 소비자들의 불만은 더욱 높아만간다.

순수한 경제적 관점에서만 본다면 고르바초프는 더 이상 주저하지 말고 과감한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즉 가격통제를 풀고 통화공급을 엄격하게 통제하면서 대부분의 생산수단을 시장메커니즘에 맡겨야 한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한다면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엄청난 가격인플레와 많은 실업자가 발생하게 될것이고 소련 국민은 개혁자체를 반대하게 될것이 거의 확실하다. 고르바초프는 바로 이런 문제 때문에 경제개혁의 사회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서방선진국들에 원조를 요청했던것인데 서방선진국들은 돈으로 원조하는 것을 거절하고 말았다.

그러면 외부의 도움없이도 소련 국민 스스로 개혁을 할수있을까. 문제는 러시아 역사를 통해 항상 그래 왔듯이 페레스트로이카도 「위로부터」의 개혁이라는데 있다.

러시아에 기독교가 들어 올때도 988년 블라디미르 대군주가 기독교 이전의 모든 종료적 신상들을 강제로 부숴버리게 하고 기독교를 국민에게 강요했고 몽골통치가 끝난후 러시아를 통일하여 강력한 국가를 세운것도 극악한 폭군 이반의 말할수 없는 학대와 탄압에 의해 이루어졌다.

17∼18세기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에 처음으로 신문,병원 등을 설립하는 등 서구문명을 받아들이는 공헌을 했으나 역시 러시아의 민중은 역사의 무대밖에 놓여 있었고 모든 변화는 「위로부터」 주도되었다. 20세기 레닌의 볼세비키 혁명도 민중을 이용은 했지만 변화를 민중아닌 극소수의 음모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도 역시 「위로부터」의 변화라는 점에서는 러시아 역사의 패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실 소련 국민들은 시장경제가 무엇인지 잘 알지도 못한다. 더욱 시장경제로 가는 과정에서 걷잡을수 없는 인플레와 실업자가 발생할때 소련 국민들이 「위로부터」의 개혁을 위해 막대한 희생을 치를 각오가 되어 있다고 기대할수는 없는 것이다.

고르바초프가 실패한다면 소련은 어떻게 될까.

스탈린 체제가 부활될 확률은 적다. 공산주의 이념에 대한 믿음이 너무도 여지없이 깨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오히려 전근대적인 독재국가,예를 들면 범슬라브주의와 같은 우익사상에 기초한 전통적 권위주의 체제가 들어앉게될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것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민주화가 너무 많이 진전되었고 민주화된 만큼 민족들의 문제가 심각하게 되었다. 퀴스턴은 러시아를 「민족들의 감옥」이라고 했지만,그 감옥의 담이 많이 무너져 버렸다. 민족들의 탈출이 시작된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소련은 내란에 직면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경제파탄,민족간의 갈등,여기에 식량위기까지 겹치게 되면 무서운 내란의 불길이 일어날수도 있다. 그리고 만일 소련에 내란이 일어나게 되면 유고 정도는 문제도 되지 않을것이다. 그 많은 핵무기는 어떻게 될것이며 세계 질서에 미치는 충격은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소련의 개혁은 실패해서는 안된다. 어느 정도의 전진과 후퇴는 불가피 하겠지만 시장경제와 다원적 민주주의로 가는 대전환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이런 뜻에서 고르바초프뿐만 아니라 서방선진국들의 책임도 막중하다는 점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된다.<사회과학원장·전주미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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