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각제는 끝난 얘기』라고 한다. 신민당 김대중 총재는 18일 한국일보와의 특별 회견에서 분명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꼬리가 달려 있다. 『여권이 변화하지 않는한 내각제를 재론 않겠다』 그렇다면 여권이 변화하면,내각제를 재론할수도 있다는 것일까.말이야 하기 나름,듣기 나름이라고 하지만,이틀전 청와대의 「내각제 선문답」을 해명하는 회견에 다시 달려나온 이 꼬리는 아무래도 어리숭하다. 그 꼬리가 무언가를 얼더듬는 것만 같다. 그래서 김총재에게,그가 청와대에 들이댔던 물음을 되돌려 줄수밖에 없다.
『국민이 원한다면 내각제를 실현시겠습니까. 아니면 어떤 경우에도 내각제를 않겠습니까』
당초 이 물음에 대한 노태우 대통령의 대답을,우리는 청와대 발표를 통하여 듣고 있다. 김총재가 먼저 국민적 합의를 도출한다면,내각제를 재고하리란 것이었다. 명문에 명답,절묘한 화답이다. 이틀뒤 김총재의 특별회견을 이 화답에 대한 댓귀로 본다면,김총재는 그 스스로가 먼저 국민적 합의를 도출할 생각이 없다는 뜻으로 응수한 셈이 된다. 형국은 「형님 먼저,아우 먼저」의 선문답식 핑퐁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권의 변화」라는 꼬리는 결국 내각제 핑퐁을 계속한다는 신호일수도 있을것 아닌가. 그 꼬리의 여운은 또 얼마나 갈것인가.
이런 의아함 속에 딱하게 느끼는 것은,우리 정치 지도자들은 정치를 외교하듯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어렵게 만나고,여·야 영수회담이니,총재회담이니,격식을 따진다. 벌써 열차례 가까이나 거듭된 같은 형식의 회동 끝에 나온 발표가,고작 상호 신뢰관계를 깊게 했다는 것을 성과의 으뜸으로 꼽고 있다. 그런가 하면 회동의 한쪽 당사자는 발표가 윤색 됐다고 불만이고,「깊은 얘기는 있을수 없는 일」 「양쪽 모두 원만하지 않으면 서로에 도움이 안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뿐이라 토로한다(19일자 한국일보 3면). 함께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끼리의 관계가,그들이 펼치는 정치의 모양이,외교를 닮아도 한때의 냉전외교를 닮았다고 할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시각으로 유추해보면,「내각제 선문답」에 이르는 그 사이 정치과정을 더 선명하게 도식화할수 있는 일면이 없지 않다. 예컨대 냉전기간중 미국이 썼던 대소 봉쇄 정책이다. 그 사이 이 나라 권력 핵심이 펴온 정략은 그런 봉쇄 정책을 닮고 있는 것이다. 제1야당을 특정지역 안에 봉쇄하여,철저하게 지역정당화 한다는 것이 그 정략의 골자요,그 궁극적인 목표는 지역정치 세력으로서는 전국 규모의 선출직을 제패할수 없음을 자각케 하는 것,그리하여 내각제를 수용하게 한다는데 있다.
그 시동이 바로 3당 합당이다. 이로써 지역봉쇄의 포위망이 완성된다. 다음은 지자제 선거. 두 차례 선거의 결과는 야당 세력이 지역봉쇄 타파에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봉쇄정책의 대성공이라고 할수도 있다.
이 뒤끝에 청와대 선문답이 위치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의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면…」이란 관용구나 야당 총재의 「국민이 원한다면…」이란 명구가 다 허사로 들린다.
그러나 아무리 냉전 같은 정치라도,정치는 정치다. 그것은 결코 정략대로만 되지는 않는다. 만일에 봉쇄정책이 성공한 것으로만 믿고,봉쇄정책의 숨은 의도를 실현가능할 것으로 기대하는 세력이 있다면,그들은 「작전」은 알아도,지자제 선거결과는 읽을줄 모른다고 할수밖에 없다.
누구나가 말하는대로,지자제 선거는 대다수 유권자가 안정을 원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 투표성향을 그저 데모사태가 싫다는 감정을 반영한 것은 아니다. 유권자들이 바라는 인정은 더 근원적으로 안정된 정치,안정된 경제다. 바꿔말해서 예측 가능한 정치,예측 가능한 경제라 할수가 있다. 봉쇄정책의 성공처럼 이는 것은 이런 바람에 편승한,부차적 결과일 뿐이다.
오히려 대다수 유권자들은 지금,그들의 투표로서 더 굳어진듯한 지역봉쇄 양상을 당혹해 한다. 그들은 여당세의 봉쇄정책과 야당세의 역봉쇄가 모두 해체되어야 함을 절감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들은 그 방도가 정부 형태를 손보는데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어떤 정부형태를 선호하건간에,그들은 이제 다시 헌법을 고치네 마네하는,예측불허의 소용돌이는 원치 않는다. 이런 것이 「내각제 선문답」이 있은 뒤에 표출된 여론의 향방 아닌가.
그렇다면,정치권이 택할 방도는 뻔한것 같다. 냉전적 봉쇄 정책을 아예 포기하고,그 안에 숨겨 가졌던 정책의도를 거두어 치우는 것이 그 첫째다. 그 다음 남는길 역시 뻔하다. 선거법과 정치자금법을 고쳐 여·야간에 보다 공정한 게임규칙을 만드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방안이야 정치권에 맡겨야겠지만,봉쇄정책의 끝장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선거구제의 개편이 꼭 필요함을 말해두고 싶다. 중·대 선거구제 같은 큰 수술이 아니더라도,현행 소선거구제에 지역비례 대표제를 합리적으로 배합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효과를 기대할 수가 있다. 여·야간 협상 기술을 발휘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이제 「국민의 원하지 않는다면…」 「국민이 원한다면…」하는 투의 허사는 집어 치울때가 되었다. 그 국민들의 원망이 벌써부터 분명해졌고,정치일정이 그런 조건이나 가정을 허용치 않을 시점이 되어서까지,허사를 되풀이 한다는것은 미련을 끝까지 남기는 것 같아,듣기가 민망하다. 그런 「미련의 정치」는 결국 새로운 위기나 만들어내는 「미련한 정치」로 타락하기 십상 아니겠는가. 차라리 여·야당 지도자가 다시 모여서 「어떤 경우에도 내각제는 않는다」고 선언하고 선거법·정치자금법 등을 타결짓는 것이 깨끗한 선택일것 같다.<상임고문·논설위원>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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