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17일 부시 미국 대통령과 오찬을 가진뒤 기자회견을 통해 전략무기감축 협상의 타결과 부시의 7월말 방소초청을 밝히면서 무척 밝은 표정을 지었다.그후 몇시간뒤 퀸 엘리자베스 2세 회의장에 나타나 경제지원 문제를 설명해나가는 고르바초프의 표정은 다소 시무룩해 보였다.
G7의 개막전부터 폐막일까지 고르바초프는 특별 게스트였지만 화제는 온통 그가 받아갈수 있는 서방의 금융지원 보따리에 쏠려 있었다.
결국 그는 멀로니 캐나다 총리의 말대로 백지수표를 받지는 못했다.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대소 적극 지원론자들이 밀려나고 『상당한 개혁이 있은 뒤에나 원조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던 미국이나 일본의 주장이 먹혀든 때문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고르바초프가 이날 밝힌대로 세계가 대결을 버리고 협력의 시대에서 자유와 민주라는 「하나의 문명」을 향하고 있는 현재의 과정도 고르바초프에게서 힘입은게 사실이다.
대처 전총리는 고르바초프를 『더불어 일할수 있는 유일한 남자』라고 찬양했었다. G7의 참가도 대처의 구상에서 나왔다고 영국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서방이 함께 일할수 있는 훌륭한 자격을 갖고 있는 것이다.
프리마코프 보좌관은 16일 만일 고르바초프가 빈손으로 귀국할 경우 소련내에서 혼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지만 고르바초프는 G7회담장에 초대돼 서방측에 「수표」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고르바초프는 수십억 달러의 원조를 요청하기 보다 G7과의 대화에 참가할수 있었다는 그 「역사성」에 더 큰 의의를 부여하려한듯 하다.
그는 분명 구걸하러 온게 아니다. 개혁은 외부의 지원이 있건 없건 계속된다는 말도 했다. 고로바초프의 런던방문은 참가 그 자체에 중대한 의미가 있다.
그 특유의 파안을 거둔채 회견장을 빠져나가는 고르바초프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회담기간중 「제8의 사나이」로 불려진 고르바초프가 거둔 성과를 결토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그는 「G7+1회담」을 멀지않아 「G8」로 변화시킬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런던에서>런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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