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목화씨가 들어온 것은 정확하게 6백28년전이었다. 고려말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가져온 열개의 목화씨였다. 그렇다면 목화가 들어와 무명으로 옷을 짓기전에 우리의 조상들은 무엇으로 옷을 해입었을까? 특히 추위가 혹독한 겨울을 무슨 옷으로 지냈을까? ◆예기라는 고전에는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데서부터 인생을 마치기까지의 규범이 있다. 아이가 열살이 되면 「바깥 스승에게 취학케 한다」 하고,이어서 「옷은 명주저고리와 바지를 입히지 않는다」했다. 명주옷은 그만큼 값비싼 사치품이요,어려서 검소함을 가르치라는 뜻이다. 그것이 그 옛날 교양있는 상류사회의 법도였다. ◆「예기」에 의하면 스무살에 관례를 올린 뒤에야 「갖옷이나 명주옷」을 입을수 있다. 갖옷이란 짐승이 털가죽으로 만든 옷이다. 그중에서도 예를 들어 여우털 가죽 옷은 임금이나 최고권력층만이 입을수 있는 사치품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름이면 삼베나 모시,겨울이면 명주나 털가죽 아니면 갈대솜을 둔 베옷으로 추위를 막았을 것이다. ◆고려말 이 땅에 목화씨를 들여온 문익점은 단순히 옷의 혁명을 가져온 것이 아니다. 목화재배를 통해 농토의 겸작 윤작에 의한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이고,무명직조라는 가내 공업을 일으켰다. 또한 무명으로 돛을 달게 돼 배의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다. 일종의 산업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문화부는 7월을 「문익점의 달」로 정하고 갖가지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특히 국립민속박물관은 학술세미나와 「문익점과 무명문화」 특별전을 17일부터 한달동안 열고 있다. 고려말의 목화나 무명 등 희귀한 유물 자료들이 역사상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종합 전시돼 우리의 관심과 흥미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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