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영수회담은 내각제 개헌문제가 표면적으로는 불가쪽으로 정리되었지만 장기적 안목에서는 불씨가 되살아나는 기묘한 결과를 연출했다. 내각제 개헌문제가 부정과 반어법의 기묘한 화술을 통해 오히려 공론화돼가는 느낌마저 주고 있다. 이와관련해 우선적으로 관심을 모으는 것은 김대중 신민당 총재의 향후 행보이고 이에 대한 김영삼 대표를 중심으로한 민자당측의 반응이라고 할수 있다. 여기에는 「경쟁과 협력」이라는 두김씨의 특수관계외에도 고차원적인 대권방정식도 복잡하게 얽혀있다.◎김대중 신민총재의 포석/여운 계속 남겨 운신폭 확보/“부통령제”로 개헌구도 진입후 지렛대로 활용
이번 영수회담을 계기로 김대중 신민총재의 향후 정치행보가 등장하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 김총재는 노태우 대통령에게 내각제 문제를 더이상 거론하지 않겠다고 밝힘으로써 그동안의 대여 정치공세의 주요고리를 스스로 해제했다. 김총재는 『노대통령이 내각제를 희망하고 있지만 주도적으로 추진할것 같지는 않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내각제를 「장기집권음모」라는 논리로 비난을 가해오던 김총재로서는 여권의 내각제추진 기도에 대해 원인무효의 판정을 내렸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정가관측통들은 이번 회담을 통해 내각제 문제의 무게가 여권으로부터 야당,특히 김총재에게로 넘어오게된 형국을 더욱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이같은 상황변화가 노대통령에 대한 김총재의 거듭된 「확인질문」을 통해 「유도」된 결과라는 점을 중시하고 있다.
물론 김총재는 회담이후 『우리당과 나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고 기존입장 고수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내각제를 향한 그동안의 공격강도를 감안할때 내각제에 대한 「사망선고」를 피하고 있는 인상이 역력해 여러갈래의 해석을 유발하고 있는 것이다.
김총재는 내각제 문제에 관한 결정적 열쇠를 자신이 쥐게됐다는 상황으로 판세를 굳혔다고 보고있는것 같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 정국에서 운신의 폭을 다양하게 확보하려 들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김총재가 내각제 자체에 대해 어느정도의 하중을 두고있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고 할수밖에 없다. 청와대 회담으로 내각제 문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김총재는 17일 부통령제 도입을 차기총선의 공약으로 내걸것이라는 종래의 주장을 다시 되풀이하고 나섰다.
이는 내각제를 둘러싼 논의의 섣부른 비약을 일단 희석시키려는 의도라고 볼수도 있으나 이보다는 오히려 복잡한 정치일정을 앞둔 향후 정국에서 「경우의 수」를 보다 넓혀두려는 원모라는 풀이가 더 유력하다.
그리고 이같은 움직임의 이변에는 현행 헌법하의 대권체제와 광역의회선거후 드러난 정국구도에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김총재의 인식이 강력히 반영돼 있다고 볼수 있다.
즉,광역의회선거 참패를 계기로 기존 정치흐름의 현상타파를 절실히 필요로 하게 됐을 것이라는 것이다.
김총재는 이를 위해 정국을 일단 「개헌구도」로 진입시키려는 시도를 전개할 것으로 분석된다. 내각제에 대해 꼬리를 무는 여운을 굳이 없애려하지 않는 태도도 이를 염두에둔 복합적인 정국구상의 일환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여기에는 내각제 문제가 여권내부에 미칠수 있는 파장의 효과까지를 충분히 고려했다고 봐야한다. 특히 이 경우 김총재의 유력한 경쟁상대인 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의 입지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계산이 병행되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현상황에서 내각제 문제의 효용가치는 김총재에게 결코 적지않다고 할수 있다. 궁극적으로 내각제로의 방향선회를 가정할수도 있지만,개헌구도 등을 감안한 정치적 지렛대로서도 내각제가 매우 매력적일수 있다는 것이다.
14대 총선결과에 따라서는 내각제 문제가 당내에서부터 폭발할 가능성까지 감안해 내각제에 대해 문을 닫아버릴수 없는 자체사정도 개재돼 있는 셈이다.
이와관련해 김총재가 내각제를 스스로 주장할 공산을 점치는 분위기가 당내에서 적지않게 제기되고 있어 주목된다.
그리고 이를 잘알고 있을 김총재가 이같은 내외환경에 대처해갈 다음 수순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김총재로서는 청와대회담을 통해 광역의회선거 결과에서 갖게된 「국민투표」의 콤플렉스를 일단 해소한 이상 내각제로 선회할 경우 극적인 「결단」의 모양새를 갖추는 일이 중요하게 돼있다고 할수 있다. 김총재가 내각제의 결정권을 자신에게 확보해놓고 싶어했던 이유도 이와 무관치않다는 지적이다.<조재용기자>조재용기자>
◎김영삼 민자대표의 시각/“성사불가” 판단속 저의경계/공론화땐 주도권타격 우려… 「후계담판」 서둘듯
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은 내각제 개헌문제가 집중거론된 노태우 대통령과 김대중 신민당 총재의 청와대 회동에 대해 겉으로는 특유의 낙관적이고도 태연한 모습을 견지하고 있다.
물론 속으로는 불편한 심기와 함게 두사람이 심상치 않은 교감을 주고받은게 아니냐는 경계의 시각을 늦추지 않고 있는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김대표측은 정치현실로나 명분상으로나 두사람간에 내각제개헌 추진합의가 이루어지기 어려울뿐 아니라,설령 합의가 이루어지더라도 개헌의 성사는 불가라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우선 민자당만 살펴보아도 민주계가 동의하지 않는한 당내 의견일치가 불가능하며,따라서 당론집약 과정에서부터 엄청난 내분과 갈등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김대표측이 내세우는 「불가론」의 첫째 근거.
또 김신민총재의 경우도 오래전부터 내각제 개헌론을 「영구집권음모」로 공격해온 만큼 기존입장을 선회하기 위한 주변설득이 결코 쉽지 않을 것으로 김대표측은 보고 있다.
김대표측은 특히 김신민총재의 「절대지지」 세력이 갖는 성향에 비추어 대통령직선제 포기는 「정치적 자살행위」 내지 「자기부정」 일뿐이라고 못박고 있다.
나아가서 민자당 일부와 신민당이 우여곡절끝에 내각제 개헌을 공동추진할 경우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는게 김대표측의 주장이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내각제 개헌을 그 자체가 갖는 긍정적 의미의 권력구도의 한 형태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영구집권음모」로 간주할수 있기 때문이라는 논리이다.
「내각제개헌=영구집권음모」의 등식은 최근의 내각제 개헌론의 한 당사자라 할수 있는 김신민총재의 지론이기도 하지만,국민들간에도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대표측의 정기적인 여론조사에서도 현행 대통령 직선제 유지에 대한 지지도가 내각제개헌 찬성도를 15∼20% 웃돌고 있다는 설명도 곁들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내각제 개헌론의 불씨가 여전히 꺼지지않고 있는 것은 내각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여권내 일부인사들과 김신민총재의 정치 계산이 맞아떨어진데 근본원인이 있다고 보고있는듯 하다.
말하자면 여권내 일부인사들은 기득권유지 또는 통치권 조기누수방지를 위한 방안으로 내각제 개헌론을 제기,정치권 특히 김대표진영을 긴장시키려하고 있고,김신민총재는 이같은 여권내 속사정을 지렛대로 삼아 실제 개헌추진 여부와는 별개로 내각제 개헌론을 거론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대표측은 이중에서도 김신민총재의 의도에 주목하고 있는듯 하다.
왜냐하면 여권의 개헌선호세력은 극히 미미하고 따라서 간단히 제압할 수 있지만,김신민총재가 다양한 노림수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김대표측의 분석이다.
이와관련,김대표측은 우선 김신민총재가 내각제 개헌론을 축으로한 정치게임을 통해 여권내 계파간 갈등을 심화시키려는 교란용 포석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김대표가 궁극적으로 차기 대권후보로 부상하더라도 그같은 내부갈등을 딛고 올라서는 것이 두사람간의 대권싸움에서 한결 유리해 질수도 있다고 계산했으리라는 것이다.
김대표측의 또하나의 시각은 광역의회선거 등 잇단 선거에서 지역당의 한계를 절감한 김신민총재가 대권전략을 근본적으로 수정할 여지를 남겨놓았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그 어느쪽이든 김신민총재는 일단 대통령 직선제 고수의 전제아래,노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보듯 내각제 개헌론을 부정적으로 접근하는 일종의 「반어법」을 구사할 경우 얼마든지 「꽃놀이 패」로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대표측은 개헌론의 확산이 향후 정치전개의 기본축이 될경우 정국주도권을 상실,대권후보구도 가시화 전략에 크나큰 차질을 빚을 소지가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김대표는 정국의 중심을 후보구도 가시화를 비롯한 정치일정 논의에 묶어둘 필요가 절실하다고 보고 있다.
이에따라 김대표는 「내년 1·2월 후보지명 전당대회,4월 총선」의 방침을 굳히고 하기휴가가 끝나는 8월초부터 분위기를 잡아 정기국회초반 여권핵심부와 담판을 지을 구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김종래기자>김종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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