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과 사상의 자유에 관련하여 국가권력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서는 안되는가. 문명사회에서는 이미 해답이 난 이 고전적 질문이 「서사연」 사건에 대한 기무사의 수사발표를 계기로 우리사회에서 다시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다.먼저 우리는 민주사회의 핵심인 자유시장제도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부문에 정착되어야하며 이 제도의 활성화를 위해 두가지 과제가 다같이 긴요하다는 데 쉽게 동의할 수 있으리라본다.
하나는 자유롭고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파괴하거나 위협하는 행동을 단호하게 제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유경쟁을 통해 사회전체의 복리와 의식의 성숙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장려하는 과제다. 전자를 소극적 과제라는 후자는 적극적 과제라 할수 있다.
이렇게 시장제도가 활성화되면 소비자의 기호에 부응하는 양질의 제품이 생산되면서 국민경제가 성장하리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정당들이 알찬 정책개발로 선거경쟁에 임함으로써 유권자의 주권이 보다 실속하게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문명화된 민주사회를 건설하려면 학문과 사상의 시장도 자유경쟁의 논리에 완전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자유로운 실험과 논증,설득,토론을 통해 훌륭한 이론,사상,예술작품을 만들려는 노력이 용솟음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경쟁력 있는 사상은 존중되고 이것이 없는 사상은 자연도태되는 것이 자유시장의 원리다. 이 이치를 살려 정신문화의 창조적 능력을 다변화,입체화 시키는 것이 지혜로운 발전의 길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국가권력은 사기와 폭력과 같이 자유경쟁을 위협하는 요소들을 제거하는 데는 결연해야 하지만 직접 시장제도에 뛰어들어 생산과 소비를 통제하고 사상과 예술의 내용을 심판하려 하면 부작용이 커진다는 것이다. 시장제도의 왜곡은 불가피하고 자유민주사회의 활력은 위축된다. 결국 소비자의 주권위에 국가권력이 군림하게 된다.
이렇게볼때 이번 「서사연」에 관한 기무사의 수사발표는 많은 우려스러운 문제점을 제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수사기관과 정부당국의 거듭된 해명에도 불구하고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지나치게 좁게 설정함으로써 진보적 학문활동에 전면 봉쇄하는 방향으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서사연」 자체를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 단체의 창설과 세미나 등에 참여한 행위자체가 피의사실로 공표되고 있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이 단체에는 적지않은 교수들과 대학생들이 참여하고 있고 많은 진보적 학문운동단체들과 연대하고 있어 앞으로 치열한 공방전이 예상된다.
「서사연」을 이적단체로 규정하는 근거는 이 단체가 주도해서 만들어낸 「신식민지 국가 독점자본주의론」이 폭력혁명을 부추기는 사회주의 혁명론이라는 것이다.
현재의 사회분위기에서 이렇게 몰아붙이면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지 모르겠으나 자유민주사회의 근간인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지키려는 입장에서 보면 이 이론과 단체가 어떻게 폭력혁명을 부추기는 행동을 했는지 명백히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에 관한 수사발표는 아직 예단적일뿐 근거가 분명치 않다.
피의자의 범죄혐의도 조직에 관련된것이 아니라 글에 관련된것이 특징이다. 즉 피의자들은 각기 「서사연」의 연구원으로서 군입대전에 「신식민지 국가독점 자본주의론」에 속하는 글들을 잡지나 대학신문에 기고했는데,이것이 이적표현물의 제작반포 소지를 금하는 국가보안법 7조5항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만일 수사당국의 주장대로 이 이론이 국가보안법의 적용대상이 된다면 이것의 파급효과는 실로 엄청날 것처럼 보인다. 또 누가 과연 어떤 근거로 이론과 사상의 이적성을 판단할 것인가의 예민한 쟁점을 불러일으킨다.
이에 「신식민지국가 독점자본주의론」에 결코 동의해본 적은 없지만 공개적인 논쟁을 여러차례 해본 경험에 근거해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이론은 하나의 이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불완전하고 결함이 많지만 이론적 체계와 경험적 적합성을 높이기 위해 나름대로 많은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소련과 동구권의 변혁이후 많은 내부 수정이 일어나는 과정에 있다.
공안당국과 집권층은 그동안 금기시된 사상을 적극 수용하고 있는 이런 이론들에 경각심을 갖겠지만 자유시장제도의 관점에서 볼때 진정 획기적인 자기혁신이 없는한 이 이론의 경쟁성은 의문스러운 상태에 있었다고 본다.
그런데도 수사기관이 경직된 잣대로 이 이론의 이적성을 규정하고 나선 것은 잠시의 억제효과는 있을지 모르나 변동하는 국내외 현실에서 보다더 중요한 사회문화발전을 막는 지혜롭지 못한 행동이 아닌가 생각된다.
흑자는 북한이 있기에 학문과 사상의 자유도 제약될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반대로 북한이 있기에 우리는 보다 더 큰 학문과 사상의 자유가 필요하다고 할수도 있다. 북한을 포용하는 원대한 이론과 사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북한에는 없는 학문과 사상의 시장을 대담하게 자율화·개방화·탄력화 시킴으로써 우리는 이 가능성을 추구할 수 있다.
「신식민지 국가독점 자본주의론」은 문제가 많지만 이런 시도들을 경유하면서 우리는 좌파의 감수성을 수용하면서 세계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보다 훌륭한 민족이론,민주사회 이론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서사연」 문제를 국가권력이 강압적으로 해결하려하면 남한과 북한의 이데올로기 통제정책에 공생적 친화관계가 있다는 의혹을 해외의 자유민주주의 국민들에게 주지않을까 염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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