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사찰 발판… 대미·일관계 급진전 소지/「대서방카드」 위해 비준 늦출수도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핵안전협정 표준문안에 합의함으로써 북한의 핵사찰에 필요한 첫 단계 조치가 비로소 성사됐다.
북한의 표준문안 수용은 지난달초 북한대표 진충국이 IAEA 이사회에서 『핵안전협정문안의 본질적인 수정이 아닌 최종 문안조정을 위해 전문가를 파견할 것』이라고 발언함에 따라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었다.
다만 북한이 지난해 7월에도 핵안전협정에 조건없이 즉시 서명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가 미국과의 직접협상에 내걸어 태도를 뒤바꾼 전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협상결과에 마지막까지 관심이 모아졌던 것이다.
이같은 북한의 과거 태도에 비추어 이번 표준문안 합의는 북한의 대외정책이 점차 유연한 방향으로 바뀌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가시적 증거로 풀이된다. 또한 북한 핵사찰을 위한 첫번째 발판이 뒤늦게나마 마련됐다는 사실은 앞으로의 북한 태도에 따라 미북,일북관계 및 남북관계 개선이 급속도로 진척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물론 북한의 이번 조치는 우리 당국자들의 분석대로 실질적인 핵사찰로 가는 지극히 초보적인 단계에 불과하다. 핵사찰이 실제로 시작되려면 아직도 수많은 절차와 난관을 거쳐야 한다.
협정 체결까지의 형식적인 절차만 살펴보아도 9월 이사회에서의 협정문안승인 및 북한의 서명,북한내부의 비준과정 및 IAEA에 대한 비준통고 등 많은 단계가 남아있다. 북한이 비준사실을 통고함과 동시에 협정은 발효되지만 그후에도 실질적인 사찰까지 이르는 과정은 쉽지않다.
우선 북한은 협정이 발효된지 30일 이내에 사찰대상이 되는 모든 핵물질 및 시설에 대한 보고서를 IAEA에 제출하게 된다. 북한은 이어 발효 90일 이내에 IAEA와 세부적인 사찰방식을 규정하는 보조약정을 체결하게 된다. 그 뒤에야 IAEA는 사찰관을 임명할수 있고 사찰이 가능해진다. 이때에도 사찰관에 대한 북한측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임명즉시 사찰이 시작된다는 보장은 없다.
북한이 핵개발 의사를 완전포기하고 이러한 모든 절차를 순순히 받아들이려 한다면 문제는 없다.
그러나 현단계에서 북한의 진의를 정확히 파악할수 없기 때문에 이같은 복잡한 사찰단계가 그때마다 난관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
특히 북한은 내부절차인 비준과정에서 시간을 지체함으로서 발효를 최대한 연기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관계전문가들의 우려이다. 북한은 원만한 유엔가입 분위기를 조성키 위해 9월초 서명절차까지만 마친뒤 비준을 늦춤으로써 핵사찰 문제를 다시 한번 대서방 관계개선을 위한 카드로 사용할수도 있다. 즉 주한미군의 핵무기문제를 국제적으로 부각시키는 동시에 북한핵사찰을 서방과의 관계개선에 최대장애요인으로 만듦으로써 핵사찰수용 효과의 극대화를 노릴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북한의 비준절차는 국회동의를 필요로하는 우리와는 달리 국가주석의 서명만으로 끝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김일성 북한주석의 서명으로 일단협정이 발효되면 다른 실무절차들은 대체로 큰 무리없이 진행될 수 있다.
관계 전문가들은 북한이 다소의 우여곡절은 겪더라도 머지않은 장래에 비준 및 사찰에 응할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이 핵사찰에 대한 구체적 압력을 더이상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맹방인 중국이 지난 6월 IAEA 이사회에서 처음으로 북한 핵사찰문제를 거론했고 이에 앞서 북한을 방문한 전기침 중국외교부장도 이같은 입장을 북한에 직접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또 핵무기를 개발하려다 곤욕을 치른 이라크로부터도 「교훈」을 얻었을 것이라는게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우리나라를 비롯 미국,일본 등 북한의 핵개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국가들은 오히려 협정발효 이후의 실효성 있는 핵사찰의 방법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협정발효후 북한이 교묘하게 핵개발 사실을 감출 경우에 대비,효과적인 핵사찰방법 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원천적으로 핵개발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한 핵사찰문제는 계속 국제사회의 논란거리로 남게될 전망이다.<정광철기자>정광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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