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명 은거… 의류공장 운영/집단폭행등 철저히 답습/이웃주민 “가끔 석유냄새,땅파기도” 의혹오대양 암장사건 자수자 오민철(34) 이세윤(45) 김영자씨(44·여) 등 오대양 관련자들이 집단 은거,공동생활을 한 장소가 드러나 오대양의 조직 자금운용 자수동기 등 의문점을 푸는 중요한 단서로 부각되고 있다.
이들이 88년 10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의류 가내공장을 운영하며 살던 서울 도봉구 수유4동 566의1 주택은 현재 아무도 살지않는 빈집으로 남아있다.
오씨 등 오대양직원 20여명은 지난 88년10월 이세윤씨 이름으로 집주인 황모씨(61·도봉구 우이동)로부터 보증금 5백만원,월세 6만원에 세를 들어 함께 살았으며 마당한쪽에 7∼8평 규모의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재봉틀을 들여놓고 점퍼 등을 만들었다.
이 집은 이듬해인 89년6월 이세윤씨에서 오민철씨로 주민등록이 바뀌었으며 오씨는 지난해 3월까지 이 집에 살았던 것으로 기록에 남아있다.
김영자씨는 경찰에서 『사람들이 점차 오대양과 박순자씨에 대한 세뇌상태에서 벗어나면서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으며 지난해초 이 집을 떠날때는 오씨 등 3명만이 남아있었다』고 말했다.
김영자씨는 89년 이세윤씨와 함께 나와 동대문구 답십리동에 방 한칸을 얻어 동거생활을 시작했다.
이들은 이 집에 살면서 공동노동,공동자금관리,엄격한 계율,남녀관계 금지,죄를 씻는 상호집단폭행의식 등 오대양 당시의 생활을 철저히 답습했다.
오씨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이탈한 것은 오씨가 『혼자서라도 최후까지 박순자 사장의 유업을 잇겠다』고 고집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동네 주민 장모씨(76)는 『당시 남녀 20여명이 마당 비닐하우스에 공장을 차려놓고 점퍼 등을 만들었으며 이밖에 10여명 정도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며 『이들은 주민들과 교류가 전혀없었고 간혹 반상회 등 일로 찾아가면 들어서자마자 집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뛰어나와 「왜 왔느냐」며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4·19묘지근처 조용한 주택가 대지 1백50평 건평 25평 가량의 집은 방이 3개로 안방 다락에는 종이박스에 국그릇 30여개가 남아있어 공동생활의 흔적을 보여주었고 마당에는 타다 남은 색안경,반짇고리 등이 있었다.
주민들은 『이들이 살당시 가끔 심한 석유냄새가 나기도 했고 집단으로 땅을 파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며 『이곳에서도 뭔가 사건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고 의구심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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