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빈여행은 상징성이 앞선다. 상징조작 그 자체라고 할수도 있다. 그런 뜻에서,6월29일 서울을 떠나,7월7일 서울로 돌아온,이번 노태우 대통령의 미국과 캐나다 순방 일정은 그 택일이 절묘했다고 할수 밖에 없다. 오늘의 「정치가 노태우」를 있게 한 두차례 선언의 날짜를 앞뒤로 짚어,민주화와 북방정책에 관련된 그의 이미지를 드높이는 효과가 있을만도 했기 때문이다.이렇게 짜인 방문일정이 의도적인 것이었는지,그저 날을 잡다보니 그리 되었는지는 알수가 없으나,노대통령 자신이 출국하는 날짜와 귀국하는 날짜의 상징성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던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여행의 마지막 기착지 밴쿠버에서 현지 교포들을 만난 그가 『올해는 6·29를 두번이나 기념했다』고 술회한 것이 그 일단이다. 6월29일 서울을 떠나,시차관계로,첫 기착지 샌프란시스코에서 다시 6월29일을 맞은 사실이,그에게는 그처럼 감명 깊었던 것이다.
그래서 밴쿠버에서 발표한 이른바 「밴쿠버 선언」 또는 「밴쿠버 지시」도 날짜의 상징성과 무관해 보이지를 않는다. 그 발표는 현지 시간 7월6일이었지만,발표의 국내 신문보도는 7월7일자였고,마침 그날은 8·15 통일대축제를 위한 전대협과 북측 대표단이 판문점 회동이 예정된 날이기도 했다. 밴쿠버에서의 느닷없는 대북정책 발표는 노대통령의 북미 순방의 끝장을 장식하고,7·7 선언의 진전을 인상지으며,재야와 북측의 범민족 대회 움직임을 희석할 수있게 타이밍이 맞추어졌다고 볼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해석말고는,굳이 밴쿠버라는 외지에서,민족 내부 문제의 「획기적인 정책」을 발표한 까닭을 설명할 길이 없다. 그렇지 않다면,진작에 있은 북측 제안에 대한 대응,하루 이틀뒤 귀국해서 발표해도 그만인 내용을,외유중에 지시하고 발표할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여기 드러나는 것은 기교요,무원칙이다. 그 느닷없음은 작년 범민족 대회를 얼버무리던 7·20 민족교류 선언의 혼란을 생각하게 한다. 실현 가능성을 제쳐둔 남문북답·북문남답의 되풀이가 엿보인다.
한가지 예로,「밴쿠버 선언」의 한 초점인 8·15 광복의 공동 경축행사란 것도,따지고 보면 북의 8·15가 다르고 남의 8·15가 달라서 접점을 찾을수가 없는 사안이다. 북의 8·15는,요즘 북에서 개조한 「력사」에 의하면 김일성이 우리 민족을 해방한 「빨치산 신화」의 절정이 되는 날이요,우리의 광복절은 북에서 볼때 공화국 남반부에 괴뢰 단독정부가 들어선 날이다. 경축 행사를 맡긴다는 우리 광복회가 김일성의 「빨치산 신화」그의 신격화를 받아들일수가 없고,북에서 대한민국을 인정조차 않는 터에,양측이 모여서 무엇을 공동으로 경축하겠다는 것이가. 이런 것이야 말로 불발을 전제로 한 오발탄 같다.
뿐이가. 「밴쿠버 선언」을 뒤따라나온 각 부처의 각가지 교류방안은 더 알쏭달쏭하다. 수학여행단·순례단·전지 훈련단의 교환도 좋지만,이산가족 문제는 간곳이 없다. 이산가족의 왕래·생사확인·서신교환보다도 대학생의 남북 왕래가 더 요긴한듯한 정책발상은 어디에 연유하는 것일까.
또 흡수통일은 않는다면서,더구나 흡수통일론을 가지고는 남북의 대화마저 가능하지 못할 상황에서,통일 비용이 2∼4천억달러쯤 들것이란 속셈을 정부 당국자가 공언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통일세를 신설하면,3백조원 가까운 그 돈의 마련이 가능하다는 것일까. 이렇게까지 통일정책이 마냥 들뜨는 까닭은 도대체 무엇일까.
분명 작년과 금년 사이 통일여건은 많이 달라졌다. 북방정책의 성공,북한의 유엔가입과 핵사찰 수용태세,북한의 대일·대미관계에서 보는 개방 움직임 등도,우리에게는 다시없는 호재들이다. 노대통령이 북미 순방을 결산하며 말한 「10년내 통일 가능성」도,그래서 있음직한 전망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다행증(Euphoria)에 걸린듯,각 부처간 다투어 내놓은 정책들이 그 전망을 더 밝게 하리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국민들은 대통령 지시 한마디로 백화재방한 그런 교류방안에 실현성이 적음을 알고,그런 정책발상을 딱하게 본다. 그들은 북한을 루마니아에 견준 것이 착각임을 쉬 깨달았던 것처럼,통일독일 그대로가 우리의 모델일수 없음도 진작 깨닫고 있다. 그 결론은 북한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 통일도 안되고,그처럼 어느날 갑자기 통일이 된다 해도 감당할 수가 없으리란 것이다. 달리 말하면 극우건 극좌건 통일지상론은 모두 허망하다는 것,그래서 우리 다운 통일방안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합의에 견주어 본다면,정부 각 부처가 벌이는 대북 아이디어 경쟁은 뒤떨어져도 한참 뒤떨어졌다고 할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10년내 통일 가능성」을 점치는 지금 정부가 서둘것은,일부 통일지상론에 쫓기지 않을 만큼 확고하고 합리적인 통일원칙을 다듬고 정책 프로그램을 체계화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 바탕위에서 북의 개방을 유도하되,자극하지 않으며,시와 비를 분명하게 가리되,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서,북의 흡수통일 공포를 잠재울 수있는 대화자세를 견지해야 하는것이다. 이렇게 본다면,겨우 범민족 대회를 놓고 기발한 제안이나 되풀이 하는 신경전을 지양하고,8·15이후에 있을 남북총리 회담이 대화의 본줄기임을 재확인하는 것이 현명하다. 우리가 제안할것이 있으면,그 회담 채널에 싣는 것이 정도요,그것이 작년의 교류선언 같은 혼란의 되풀이를 막는 길이 된다.
작년의 민족대교류 선언을 보며 본란은 「냉전시대의 현인」 조지·케넌의 말을 인용했었다.(90·8·18=시간의 정치학). 냉전이 절정에 이르렀던 54년의 프린스턴 대학 연설에서 그는,「세계문제에 대한 접근에서,우리는 기계공이 아니라 정원사가 되어야한다」고 했던 것이다. 우리의 통일도 결국은 시간과 품을 들이는 정원사의 정성을 가지고 가꾸어야 함을,이제는 깨우쳤으면 한다.<상임고문·논설위원>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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