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위에 호박이 굴러가듯 국회가 너무나 「얼렁뚱땅」 굴러가고 있다. 9일부터 사흘째 대정부질문이 계속되고 있지만 단한번의 거침도 없이 국회가 쾌속 질주하고 있다.원만한 의사진행이 생산적인 국회상의 일면이라면 물론 바람직하다.
그러나 맥빠진 국회의 모습이라면 곤란하다.
다섯명의 여야의원이 사이좋게 번갈아 등단해서 자신에게 할애된 30분간의 발언을 읽어내려 간다. 대정부 질문이라지만 대답을 듣기위해 물어보는 것은 전혀 없다.
그저 『이러저러한 대정부질문을 했다』는 기록을 남기자는 것이다. 오직 국회속기사만이 의원들의 「질문」을 경청하고 있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발언의원수 곱하기 30분」이면 그날의 질문시간이 정확히 계산된다. 물론 교대시간이 1분정도씩 끼어들지만.
총리이하 국무위원들의 답변이 시작되면 이미 국회 본회의장은 하오에 접어든 어시장같다.
3분의 2 이상의 의원들이 「제볼일」을 위해 자리를 뜨고나면 국가정책의 최고책임자들의 공허한 답변이 빈 의석에 메아리칠 뿐이다. 『의원님의 그 질문은 금시초문으로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의원님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등 「질문」에 대한 답변이아니라 그냥 절차상 넘어가기 위한 대구일 따름이다. 「어떤 의원의 여차여차한 질문에는 이러이러하게 답변했다」는 기록을 남기자는 것이다. 역시 국회속기사만이 자신들의 업무에 충실하고 있다.
이번 국회의 대정부 질문중엔 이례적으로 대충대충 넘어가서는 안될 요소들이 많았다. 8일의 세대교체 주장과 내각제 개헌발언,9일의 남북한 핵무기 문제에 이어 10일에는 한 야당의원이 대통령 친·인척을 겨냥한 「심상치 않은」 공세까지 폈다. 그러나 역시 질문자나 답변자나 서로가 서로에 대해 무반응을 보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어따대고 그런 질문을 하느냐』는 식의 당연한 반격이나 『왜 얼렁뚱땅 넘기느냐』는 투의 항의도 전혀없다.
답변안해도 좋으니 내 할말이나 하겠다는 「무관심」과 준비한 답변이 이것이니 읽고나 내려가겠다는 「무성의」가 절묘한 조화를 이뤄 근래에 보기드문 국회모습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국민들 시끄러운것 싫어해요. 광역의회 선거에서 봤잖아요』라는 한 중진정치인의 이유설명은 『그렇다면 차라리 서류로 질문·답변을 하지』라는 기발한 국회운영 방법을 떠올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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