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15명… 「세뇌」깨며 흩어져자수자 6명은 오대양의 광신적인 추종자였으며 일부는 사건이후에 상경,공동생활하면서 오대양당시의 생활관습을 그대로 지켜왔다.
이들은 모두 87년 8월24일 채권자 이상배씨(당시 51세) 부부를 폭행한 혐의로 구속됐다가 이해 12월23일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이세윤씨(45)와 동거중인 전 오대양직원 김영자씨(44)는 사건직후 상경,파출부일 등을 하다 87년말 생존자끼리 연락이 돼 청계천 삼일아파트를 1백만원에 얻어 5명이 함께 살게됐으며 이 사실이 알려지자 사회에 적응치못한 오대양생존자들이 모여들어 이듬해에는 15명이 공동생활을 했고 여기에 이씨도 끼여있었다.
이들은 각자 낮에는 파출부,공장일 등을 하면서도 오대양시절을 그리워하며 당시의 엄격한 생활방식을 그대로 답습했다.
어느정도 돈을 모은 89년초에는 수유동 인수중부근에 공동운영의 가내공업공장을 만들었으나 사람들이 점차 세뇌상태에서 깨어나면서 서로에게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하나 둘씩 흩어졌다.
김씨와 이씨는 89년 4월께 빠져나와 답십리에 50만원에 방한칸을 얻어 함께 살아왔다.
이씨는 친척의 도움으로 K택시에 취직,일했으나 오대양당시의 악몽에 시달려 교통사고를 자주냈고 『간밤 꿈속에서 또 누구를 보았다』며 악몽에 시달려왔다. 이씨는 87년 1월 함께 오대양에 있었던 부인 박형심씨가 암으로 숨지자 암매장한 사실을 가장 괴로워하면서 최근에는 『차라리 자수하는게 낫다』는 넋두리도 해왔다.
이씨는 10일 상오10시께 김씨에게 아무말없이 집을 나갔으나 김씨는 『직감적으로 자수할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김영자씨는 용인공장 찬모로 있으면서 사건당시 현장을 최초로 목격,10일동안 경찰조사를 받았었다. 김씨는 사건 4일전인 25일 박순자씨가 와 천장으로 올라가도록 도와주었고 매일 주먹밥을 만들어 올려 보냈으나 천장위에서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당시 오대양 관리부차장이었던 김도현씨(38)는 연립주택 지하방을 보증금 5백만원,월세 10만원에 세들어 살면서 부인 유연숙씨(31)와 2남(10,11세) 등을 데리고 택시운전을 하며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김씨는 전남 고흥에서 도사견사육 등을 하며 유복하게 생활하다 85년께 부인 유씨와 아이들을 남겨둔채 홀연 대전으로가 오대양에서 생활했다. 유씨도 형제를 데리고 뒤따라 오대양에 들어갔는데 방도 따로 쓰고 부부생활도 금지됐으며 부부가 말만해도 심하게 구타당했다고 말했다.
전재산을 오대양에 바친 것은 물론 친척들의 돈 수천만원까지 털어넣었던 김씨는 최근에야 『오대양시절은 마술에 걸렸던 것처럼 느껴진다』고 후회했다는 것.
경기 안산에서 목공으로 일하는 한호재씨(38)는 오대양에서 잡역부로 일할 당시 구내식당에서 함께 일하던 부인 김숙희씨(34)가 집단사망 사건때 숨진뒤 혼자살고 있다.
한씨는 이날 상오6시20분께 『대전으로 가겠다』고 말한뒤 집을 나갔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