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6·25산화용사 40년만의 “귀향”/여주 금당마을 호국영령비 제막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6·25산화용사 40년만의 “귀향”/여주 금당마을 호국영령비 제막

입력
1991.07.07 00:00
0 0

◎재경회 주민 9백여만원 모아/마을출신 젊은이 5명 넋기려금당마을 사람들은 호국영령들과 함께 산다. 6·25당시 전사했으나 시체도 찾지못해 「무명용사」로 처리됐던 마을젊은이 5명의 넋을 기리기위해 호국영령비를 세운 경기 여주군 가남면 금당1리 40가구 2백여명은 이 호국의 비석이 마을의 화목과 안녕도 지켜줄 것을 믿고 있다.

마을출신 재경회의 조충섭 건립추진위원장(52·서울 서초구 방배동 966의33) 등 서울에 나가있는 85명과 주민들이 9백여만원을 들여 지난달 16일 제막한 호국영령비는 전국에서 마을단위로는 처음. 개인택시 운전사인 조씨가 생업도 뒷전으로 미뤄둔채 앞장선 덕분이었다.

조씨는 2년전 6월말 다른 택시들이 외면하는 휄체어의 상이군인을 태우고 우체국 시장 등을 다니며 돈을 찾아주고 물건을 골라준뒤 지하 단칸 셋방에 데려다 주면서 나라를 지키다 희생된 용사들을 위한 일을 생각하게 됐다.

그 상이군인에게 밥을 지어주고 옷도 입혀주며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던 조씨는 전쟁터로 떠나던 마을장정들의 뒷모습,자식과 형제를 잃고 40년간 슬픔속에 살고있는 고향사람들이 자꾸 눈에 밟혔다.

66년에 고향을 떠나와 두칸짜리 전세집에서 부인 전경자씨(47),남매와 함께 어렵게 살고 있으면서도 조씨는 마을출신 전몰용사 충혼비를 세우기로하고 재경향우회,금당마을 대동회 등을 찾아다니며 성금모으기를 시작했다. 그 바람에 수입이 절반으로 줄고 내집마련은 더 늦어지게 됐지만 우뚝 세워진 비석은 주위의 눈총과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기에 충분했다.

건립장소 문제로 고심하던 주민들은 고 조문증 일병의 유족이 선뜻 내놓은 마을어귀 야산에서 지난달 16일 정동성 의원(민자) 홍종대 여주군수 김복우 여주경찰서장까지 초청,2m가 넘는 오석을 제막했고 2주후에는 비문을 지어준 시인 김찬직씨(53)와 글씨를 써준 박충식씨(67)에게 감사패도 증정했다.

비석주위의 풀을 뽑고 자주 비석을 닦는 고 조영섭 일병의 어머니 윤천섬씨(86)는 『동구밖 느티나무 아래에서 떠나간뒤 소식없던 아들이 이제야 고향땅에 돌아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주민들은 앞으로 해마다 6월6일에 비석앞에서 6·25을 되새기는 행사를 갖고 영령비주변의 조경에도 힘쓸 예정이다. 제막식에 고적대를 보냈던 금당국교도 이 비석이 6·25를 모르는 어린이들에게 좋은 교육장이 될 것으로 보고 비석관리를 맡아주겠다고 약속했다.

「젊은 영웅들이여 조국이기에 하나뿐인 그 목숨 초개처럼 기꺼이 바쳤으니 그 충정 그 뜻 영세무궁 빛나리」

금당마을 용사들도 이제는 외롭지 않을 것이다.<여주=남대희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