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김대중총재가 할일/안병영 연세대 사회과학대교수(정치진단)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김대중총재가 할일/안병영 연세대 사회과학대교수(정치진단)

입력
1991.07.04 00:00
0 0

지난번 시·도의회 의원을 뽑은 광역의회 선거결과에 접하며 문득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그것은 정답없는 객관식 선다형 문제앞에 앉아있는 수험생의 어두운 모습이었다. 수험생중 몇몇은 끝내 해답찾기를 포기했고,또다른 몇몇은 뻔히 정답이 없는줄 알면서 그중 그럴싸한 문항을 찾아 불편한 심정으로 그 번호를 기입하는 장면이었다. 지난 광역의회 선거에서 아예 투표권을 포기한 유권자의 41%가 아마 전자에 속할터이고,비록 투표를 하긴했지만 그들중 많은 이의 심경이 후자에 가깝지 않았을까.투표율이 형편없이 떨어진 가장 큰 이유는 정치불신 때문이라는 것이 공론이다. 그렇게된 직접적인 원인중의 하나는 정치인들이 마련한 선택지중에 유권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해답이 없다는데 있다. 오답의 선택을 강요받는 유권자가 정치세계에서 신명이 날리 없다. 그 가장 두드러진 역사적 사례가 양김씨의 대권욕 때문에 야권단일후보를 내세울 수 없었던 지난번 대통령선거의 경우였다. 이처럼 정치인들이 그들의 소아적 이해관계 때문에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정치적 대안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엉뚱한 선택지를 강요하는 것이 한국정치의 최대의 비극이다.

그런데 오늘 이 어긋난 관행이 다시 되풀이 되고 있다. 광역의회 선거의 엄청난 충격에도 불구하고 신민당이나 민주당이나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 범야통합이라는 너무나도 명백한 시대적 명제가 기득권 유지에 급급한 보스정치에 밀려 퇴색되고 국민들은 정치불신의 깊은 늪에 다시 빠져들고 있다.

야권통합이 절실하다는 것은 국민적 상식이다. 그 이유는 오늘의 민자당 독주를 막고 보다 민생동기를 구현하는 쪽으로 정치개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야권통합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현실은 오히려 이와는 다른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많은 이들은 여기서 오늘의 정치문제를 푸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그 누구보다도 제1야당의 총재인 김대중씨가 쥐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김대중씨에게 야권통합을 위해 우선 2선으로 후퇴할 것을 권하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에게 차기 대통령선거에서 대권후보로 나설 희망까지 버리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가 원한다면 또 그것이 가능하다면 통합야당의 정당성 있는 후보로 나서는데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다만 파행적인 한국정치가 다시 제궤도에 오르기 위해 잠시 그가 당권을 놓고 비켜서는 것이 요청된다는 얘기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이번 선거에서 신민당의 한계가 다시 분명히 드러났다. 선거참패후 급한대로 「유일야당」의 입지를 확보했다고 자위하고 있으나,비호남지역에서 신민당이 거둬들일 수 있는 정치적 수확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음이 다시 확인된 셈이다. 어떠한 둔사로도 이 엄연한 정치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따라서 신민당과 김대중씨의 현실인식은 바로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적어도 지금 신민당의 그 모습으로는 「지역당」을 탈피,「전국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번 신민당 당무회의에서 모의원이 신민당의 패배는 「전술적인 것이 아니라,구조적」이라고 말한 것은 정곡을 찌른 말이다. 물론 김대중씨는 호남지역의 실로 밀도높은,아니 한마디로 충성스러운 정치적 지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이 또한 한국정치에서 마땅히 고려해야 할 그의 중요한 정치적 지분이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의 그의 강력한 세력기반이 그의 힘의 원천인 동시에 그의 한계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함께 인식해야 한다.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지역당 플러스 알파 정도의 오늘의 신민당에 안주해서 일차적으로 기득권 확보에 급급한다면,그는 끝내 역사에 기록될 국민의 지도자로서 대붕의 꿈을 펼쳐 보기는 커녕,한낱 지역정치가의 수준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 들여야 할 것이다.

민주공당으로서의 신민당의 한계는 지난번 김대중 총재의 인책을 51대 0으로 일축한 당무회의 표결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사회민주화를 가장 세차게 외쳐왔던 신민당이 기실 당내 민주주의라는 맥락에서 가장 문제가 많은 정당임은 이미 공지의 사실이었으나,국민적 정서와 동떨어진 이런 결정을 「합의적」으로 스스럼없이 해치우는데는 많은 이가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다. 재야출신도,서명파도 자기성찰이 결정적 순간까지 당총재의 절대적 권위에 눌려 숨을 죽여야 한다면 이 당의 체질개선은 요원한 것이 아닌가.

신민당은 지역성과는 무관하게 이러한 1인 정당적 성격 때문에 많은 이의 신뢰를 잃고 있다.

신민당이 지역당,1인 정당의 구태의연한 모습으로 그냥 남아있는 경우,가장 좋아할 정치세력은 민자당이며,가장 마음 아파할 이들은 대다수 국민들이다. 또한 신민당이 야권통합이라는 국민이 불러 주는 엄연한 정답을 끝내 외면하고 현실을 호도하며 기득권 확보에 급급한다면 앞으로 이 당의 정치적 장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크게 우려된다. 야권이 통합된다 해서 정권교체가 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야권통합이 「미신」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도대체 지리멸렬한 오늘의 야권행색으로는 수권정당의 모습을 갖췄다고 말할 수 없다.

김대중씨는 한때 노벨상 후보감으로 거론이 됐던 큰 재목의 정치인이다. 그의 민주투쟁경력과 빼어난 경륜은 아직도 야권에서 누구보다 우뚝 솟는다. 따라서 그가 얼마동안 당권을 놓고 야권통합의 물꼬를 터준다고 해서 그의 정치적 입지가 하루 아침에 무너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한걸음 물러서서 야권통합을 이루는데 도움을 주고,뒤이어 통합된 야당의 대권후보로 자연스럽게 민주적 경선에 나서는 것이 현재로는 가장 합리적일 것으로 보인다(이점은 민주당의 이기택 총재에게도 똑같이 해당된다).

물론 여기에는 위험부담이 따를 수 있고 상황변화에 따라 당초의 의도대로 일이 진척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의 여망에 따라 야당통합이 이루어지고 만약 그가 거기서 민주적 절차에 따라 대통령후보로 추대된다면 그의 정치적 위상은 크게 높아지리라고 본다. 무엇보다 그가 현재 결여하고 있는 「전국성」과 「민주성」이 크게 메워질뿐더러 정치적 정당성이라는 맥락에서 현재와는 비교도 되지않는 입지가 조성될 것이다.

만일 비록 그가 통합야당의 보이지 않는 산파역을 하고 끝내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실패하는 한이 있더라도 먼눈으로 볼때 그것은 정치적 실패라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국민의 여망에 따라 큰 뜻에 헌신하며 최선을 다한 정치가로서 국민들이 기억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그가 한 사람의 정치인으로서 일생일대의 정치적 대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이라고 본다. 국민에게 바른 선택지를 선사할 수 있는 정치가만이 역사에 남는다는 굳은 신념속에서 말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