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계4동 누비며 하루가 짧은 주민 보살피기/첫부임때 생보자 천3백가구 절반으로 줄여/“감사보다 표창하라” 통보지난 28일 상오 과천 정부청사의 보사부장관실에서는 색다른 표창장 수여식이 열렸다. 안필준 장관과 최선정 사회복지심의관을 비롯,보사부간부 10여명은 단 한명뿐인 수상자를 둘러싸고 즐겁게 박수를 치며 축하해 주었다.
수상자는 서울 노원구 상계4동 동사무소 사회복지전문요원 전병달씨(30·별정직 7급). 서울에서 영세민이 3∼4번째로 많은 상계4동에서 3년동안 근무해온 전씨는 지난 4월 생활보호대상자 관리업무를 감사하던 감사원이 『이런 공무원을 표창하지 않고 뭘 하느냐』고 보사부에 알려줌에 따라 상을 받게 됐다.
서류를 들춰가며 꼬치고치 캐묻던 감사반은 더이상 따져볼 필요가 없다고 이틀 일정의 감사를 도중에 그만두고 「무사안일에 빠지기 쉬운 공무원이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최대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감사소견과 함께 표창을 하라고 통보했다.
모범공무원을 데리고 있으면서도 직접 찾아내지 못한 보사부와 서울시는 머쓱해졌지만 승용차 소유자를 생보자로 지정했다가 최근 곤욕을 치른 처지여서 전씨의 발굴을 명예회복의 계기로 반겼다.
전씨는 부산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일반회사에 1년 근무하다 사회복지 전문요원을 첫 공채한 88년 서울시공무원이 됐다. 그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밤낮없이 일하고 있는 상계4동은 청계천 양동 등지의 철거민들이 68년께부터 옮겨온 곳으로 90% 이상이 무허가건물이며 주민의 12%가 생보자이다.
전씨는 8∼10평의 무허가건물이 빽빽한 골목을 누비며 1천3백가구 5천6백여명의 생활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파악했다.
『실상을 정확히 파악해 혜택을 받아야할 사람이 받을수 있게 해주는 것이 나의 임무』라는 전씨의 노력으로 88년 1천3백가구 5천6백11명이던 생보자가 89년 1천42가구 4천36명,90년엔 6백65가구 2천3백11명으로 절반이상 줄었다.
생보자 가구는 낮에 빈집이 많기때문에 주로 밤에 일하는 전씨는 밤11시 이전에 퇴근한 적이 거의 없다. 동장으로부터 하오에 나와 근무하라는 말을 듣기도 하는 전씨가 밤12시에 찾아가도 주민들은 반겨맞는다.
정부시책을 제대로 알지못해 헤택을 보지못하는 것을 대신해줄뿐 아니라 지역단체·유지들과의 결연까지 해주는 전씨의 고마움을 잘알기 때문이다.
경남 창녕이 고향인 전씨는 국교 3년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렵게 공부했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싶어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서울에서 혼자 하숙하는 전씨는 동갑인 아내 성숙희씨도 창녕교육청에 근무하는 공무원이어서 한달에 한번정도 두아들과 아내를 만나고 있다.
전씨는 89년8월 전세보증금이 없어 쫓겨나게된 소녀가장에세 월급과 수당전액 50만원을 그대로 주었다가 부부싸움까지 벌였던 사람이다.
사회복지 전문요원은 생활보호 대상자들의 자립을 도와주는 전문직종으로 88년 6대 도시 영세민 밀집지역에 3백24명이 첫 배치됐는데 7월부터는 1천6백76명이 증원돼 모두 2천명이 근무하게 된다.
『영세민들이 잘 살아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는 보람에 산다』는 전씨는 『그런 의지없이 빈둥거리며 가난을 대물림하는 사람들이 가장 안타깝다』고 말하고 있다.<정재용기자>정재용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