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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시국」 마감/고태성 사회부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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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시국」 마감/고태성 사회부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1.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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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하오 명동성당에서 43일간 농성을 벌여온 국민회의 관계자들이 미지막으로 성당문을 나섬으로써 강경대군 치사사건이후 계속된 「명동시국」은 일단락됐다.명동성당 마지막 철수자들은 그동안 경찰과의 사이에서 중재역할을 해온 박형규 목사 등과 함께 봉고차를 타고 성당문을 나와 중부경찰서에 도착함으로써 「검거가 아닌 자진출두」 하는 모양새를 갖췄다.

중재에 나선 박목사를 비롯,국민회의측과 여러 경로를 통해 협상·대화를 해왔던 경찰도 자진출두 형식을 양해,수사관 1명만을 철수 봉고차에 동승시킨채 수갑을 채우지 않고 중부 경찰서에 도착한뒤 구속절차를 밟았다.

국민회의 관계자들은 이미 여러차례 성명 등을 통해 『정정당당하게 자진출두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고 다만 그 시간이 문제였다.

그러나 지난 24일 유서대필 혐의를 받고 있는 강기훈씨가 자진출두 형식으로 성당을 나놔 경찰에 연행된 후에도 남은 수배농성자들은 농성해제 및 검거방식을 놓고 심한 논쟁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강강파들은 무기한 농성으로 끝까지 투쟁하자고 했고 온건파들은 자진출두의 명분만 확보되면 검거에 응해 법정투쟁에 나설것을 주장,결국 온건파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셈이다.

이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선데는 29일 열릴 예정이던 국민대회가 사실상 무산되리라는 예측도 보이지 않는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했을 것같다.

이날의 자진출두 형식을 통한 구속수감은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마지막까지 중재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원로 인사들의 의견을 존중한 합리적인 판단이었던것 같다.

수배 농성자들이 성당을 나설때부터 겅찰서에 도착할때까지 「자진출두자」 들과 경찰이 보인 상대방에 대한 「예우」 등 조심스러운 태도도 성숙해 보였다.

농성 해제자들은 그들의 주장대로 앞으로 법정투쟁을 포함,민주화 투쟁을 계속해 나갈테지만 이날 「민주화의 성지」 명동성당을 나서며 양측이 보여준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존중」은 그들 모두에게 새로운 경험일것이다.

국민회의 관계자·경찰·성당측의 엇갈린 입장으로 지리하게 계속되던 「명동시국」은 이날로 끝이났다. 그러나 국민회의 관계자들이 떠난 성당주변에는 그들이 마지막까지 고수했던 명분이 무엇이었는지 공허한 의문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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