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타이의 역사는 로마제국으로 거슬로 올라간다. 이때 군인들이 목에 「훠카레」란 천을 두른것이 그 시초라고 한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자리잡게 된것은 1656년 크로아티아군대가 파리를 방문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 당시 크로아티아 군인들은 목에 린넨천을 두르고 있었는데 이것이 루이14세의 눈에 들어 유행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프랑스어의 넥타이를 뜻하는 「크라바트」의 어원이 바로 「크로아티아인」이라고 전한다.당시 크로아티아 군인들은 멋으로 린넨천을 목에 두른것은 아니었다. 목에 걸친 호신물을 가리기 위해 이를 사용했다. 이를 두르고 있는동안 점차 린넨천자체가 재앙을 막아준다고 생각하게 돼 애용했고,이것이 루이14세란 엉뚱한 사람의 눈에 뛴 것이다. 이 덕택에 오늘을 사는 남자들은 숨이 콱콱막히는 여름에도 목을 졸라매고 다니는 고역을 치르게됐다.
이처럼 3백40년 가까이 남자들의 목을 졸라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크로아티아 사람들이 요즘 이웃 슬로베니아와 함께 자신들은 「유고슬라비아연방공화국」이란 속박에서 벗어나겠다고 독립선언을 하는 등 발버둥을 치고 있다.
현재 세계의 이목이 쏠려있는 크로아티아공화국은 유고슬라비아연방의 6개 공화국중 두번째로 큰 5만6천5백38㎢의 넓이에 4백70만명의 인구를 포용하고 있다. 슬로베니아공화국과 함께 경제적으로 독립하기에 충분할만큼 윤택해 남부지역의 공화국과는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지난 5월19일에 실시한 국민투표에서 95%가 독립을 지지해 유고슬라비아연방으로 부터의 탈퇴가 시간문제로 여겨져 왔었다.
2차대전후 이번에 독립을 선언한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계의 피를 받은 티토의 중립외교로 인상을 깊이 해온 유고슬라비아는 우리보다는 북한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지만 우리에게는 77년 파리에 사는 피아니스트 백건우 윤정희부부 납치 미수사건이 발생한 나라라는 반갑지 않은 인상과 함께 떠오른다. 유고슬라비아란 국명에는 남슬라브인이란 의미가 담겨있다. 6개 공화국에 2개 자치주로 구성돼있고 7개 국가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5개의 주요민족에 언어 4개,종교 2개,문자 2개가 어우러져 있는 복잡한 연방국가로 뒤얽힌 구성요소때문에 유럽의 화약고로 불려왔다.
크로아티아공화국은 10세기초까지 독립국가를 형성했다.
그러나 12세기초 헝가리에 정복된 후 넥타이로 목을 졸라맨 만큼이나 답답한 역사가 시작됐다. 오스트리아헝가리 통치아래선 제한된 자치권을 보유했으나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붕괴됨에 따라 여러민족에 시달리다가 유고연방의 일원이돼 오늘에 이르렀다.
프란조·투지만 대통령은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이며 1918년까지 한번도 실질적인 독립성을 상실한 일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남자들의 목을 졸라매는 넥타이 유행의 일등공신이란 것외에는 우리에겐 별로 알려진 것이없다.
현재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투지만 대통령의 말처럼 70여년만에 찾아온 독립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유혈충돌에도 굽히지 않을 뜻을 다지고 있다. 외신들은 크로아티아공화국 등의 독립이 유럽의 현질서를 뒤흔들지 모른다고 우려하는 미국,EC,소련이 반대입장에 서있어 앞길이 험난하다고 전한다. 정치적이건 경제적이건 또 문화적이건 한번 남의 속박을 받게되면 (우리도 경험했지만)이를 벗어나는 것이 이처럼 어려운 것이다. 스스로 좋아 린넨천으로 목을 속박했던 그들이 유고슬라비아연방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지금도 그러한 전통을 지니고 있는지,그리고 이들의 앞날이 어찌될지 궁금하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