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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건너 우골탑/김창열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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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건너 우골탑/김창열칼럼(토요세평)

입력
1991.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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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해외유학생은 얼마나 될까. 뻔한 것 같은 이 숫자를 도시 종잡을 수가 없다.교육부에 의하면 그 숫자는 작년여름 현재로 5만8천명쯤 된다. 지금은 더 늘어 6만명쯤 될지도 모른다. 나라별로는 미국유학생이 3만여명으로 가장 많다.

그러나 이것은 통계라기보다 어림짐작에 가깝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편법 유학의 「배꼽」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그 「배꼽」의 구성도 아주 다양하다. 관광비자로 출국해서 눌러 앉는 불법유학,대학낙방생의 도피유학,고교재학생의 조기유학,단기연수를 빌미로 나가는 철새유학에,일본에 가서 신문을 배달하며 대학을 다닌다는 얼치기유학 등등…. 이렇게 해서 생긴 「배꼽」이 1만3천명쯤은 되리라고 한다. 지금 같은 유학 붐이라면,조만간에 배꼽이 배보다 더 커질 수도 있다.

이런 짐작은,유학예비군을 양산하는 이땅의 교육풍토를 생각할 적에,결코 과장일 수가 없다. 그 실상은 『과외비용으로 해외유학』이란 유학알선업체 광고가 잘 말해준다. 이런 광고로 유학예비군을 편성하는 업체가 서울에만 1백50군데나 된다.

그러니,해마다 유학경비로 나가는 외화 또한 만만치 않으리란 것은 당연한 짐작이다. 하지만 이 경비의 규모도 통계로 잡히지를 않는다. 다만 작년 한해 해외여행경비로 나간 27억8천6백만달러의 7%쯤이 유학경비였으리라는 추계가 있을 뿐이다. 이 추계만으로도 한해 유학경비 2억달러라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여기에는 공납금과 학부모송금은 들어있지 않다.

그래서 다른 계산을 해본다. 유학생 한 사람에게 송금가능한 생활비(공납금 등 제외)는 단신인 경우 한해 1만2천달러,유학생 거의 다가 이 한도액만큼 송금 받는다면,그 총액은 약 6억달러가 된다. 그러나 웬만한 미국 대학의 한 해 유학비가 2만달러쯤이라고 잡고,여기에 유학생 숫자를 곱하면,가볍게 10억달러를 넘어선다. 이런 계산이 얼마나 정확할지는 몰라도,좌우간 엄청난 돈이다.

이래서 우리나라 학부형들은 재정이 넉넉지 못한 미국대학­요즘은 이름도 없는 사립고등학교까지­의 돈줄이 된다. 서울의 여러나라 공관들이 한국 유학생 유치경쟁을 펴는데 까닭이 없지 않다.

형편은 50년대 우골탑과 비슷하다. 너도 나도 대학을 간다고 해서,논을 팔고 소를 팔아 대학등록금과 서울 하숙비를 대던,그 한풀이 같던 교육열이 해외로 뻗은 것이다. 50년대 우골탑을 거쳐,그래도 경제성장의 주역으로 자리잡은 세대가,이제는 선대를 이어,바다 건너 우골탑을 쌓고 있는 꼴이다.

그렇다고 그때 우골탑을 몽땅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교육열을 그렇게라도 수용했길래,지금만한 경제성장이 가능했던 것이다. 지금의 바다 건너 우골탑 쌓기도,크게는 그렇게 보아줄 수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해마다 그 많은 돈을 쓰고,그 많은 인재를 내 보낸 뒤끝의 수지다. 어떻게 하면 그 수지흑자를 극대화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느냐인 것이다. 이런면에서도,낭비적인 편법유학,나라망신 시키는 유학사고를,그냥 일부 극소수의 문제,일시적인 현상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이런 생각을 하던 차에,편지 한장을 전송받았다. 읽어 보니,편지를 전송해준 이의 뜻을 알 것도 같다. 편지에는 이런 말이 보인다.

『외국에 나가 공부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유학의) 최대효과를 달성하는데는 무엇보다도 배우고자하는 동기와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즉 꾸준한 출석,수업중의 적극적인 참여(등의),진지한 노력입니다』

편지에는 여름연수가 방학여행과 같을 수는 없다는 주의도 들어 있다. 얼핏 지도교수가 유학을 떠나는 제자에게 권면하는 편지같다.

하지만 사실은 이 편지가 미국 하버드대학 여름 영어연수 코스의 한글안내문이다. 「프로그램 신청자 여러분」 앞으로 된 이 편지는 연수참가자중 한국학생이 20%를 넘고 있으며,그 때문에 외국인 접촉기회가 오히려 적을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프로그램을 세일즈하기보다는 한국학생의 참가를 사양했으면 하는 투가 행간에 엿보이는 것같다. 그 까닭의 일단이 편지 말미에 밝혀져 있다. 여름 연수가 하버드대학 정규학과에의 입학을 보장하지 않는다,연수 프로그램과 하버드 입학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되풀이 강조해 놓고 있는 것이다.

하버드대학이 이런 투의 한글편지를 인쇄해 갖고 있어야 했다는 사실에서도 지금 우리의 유학붐이 지닌 문제의 한 단면을 읽을 수가 있다. 편지에 엿보인 문제들은 불법·편법유학의 사고·탈선과는 다르다. 하지만 그런 문제들은 어느 정도의 지도와 준비만 있었다면,피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가. 불법·편법유학만이 아니라,적법절차를 밟은 유학도 그 나름의 문제를 빚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런 문제들을 몽땅 뭉뚱그려 보면,그 끝은 「유학정책의 부재」라는 말한마디에 가 닿는다. 해외여행·유학 자유화가 정부방침인 이상 달리 손을 쓸 수가 없다는 것이 교육부의 처지인 모양이나,유학규제가 아닌 유학지도의 강화와 실태파악,유학알선업체의 감독·단속마저 못하는 까닭은 언뜻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할 말로 한해 10억달러나 되는 지출항목을 어떻게 나 몰라라 하며,몇만명의 젊은이를 기민하듯 할 수가 있는가. 더구나 우루과이라운드로 외국의 대학·학원이 진출해 옴으로써 생길 새로운 문제양상은 어찌할 것인가. 유학수지흑자를 극대화하고,교육의 개방·국제화시대를 옳게 맞자면,유학정책이 교육정책의 큰 몫을 차지해야 한다. 이에따른 대책방안을. 교육부를 넘어선 정부차원에서 서둘러 마련해야 할줄 안다.<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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