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12.12사태 또 하나의 희생자/고 김오랑중령 미망인 백영옥씨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12.12사태 또 하나의 희생자/고 김오랑중령 미망인 백영옥씨

입력
1991.06.29 00:00
0 0

◎남편사망 충격 실명… 불교귀의 새삶/“국가 상대 손배소” “포기”로 의혹 낳기도28일 추락사한 고 김오랑중령 미망인 백영옥씨(43)는 또 한사람의 시대적 희생자였다.

5공화국을 탄생시킨 12·12사태 소용돌이에 남편을 잃고 그 충격으로 눈까지 멀게된 백씨는 지난 10여년간 5공세력의 「외압」을 여자의 몸으로 이겨내기 위해 분노와 눈물로 살아왔다.

남편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해 실명,동정을 불러일으켰던 백씨는 3년간 고독과 실의에 빠져있다 지난 83년 1월 부산 영도구 태종대 미용사주지 정각스림(58)을 만나 불교에 귀의하면서 「제2의 인생」을 개척해 가기 시작했다.

백씨는 그해 정각스님의 도움으로 운영난으로 문을 닫게된 불교 자비원을 인수,「자비의 전화」를 개설하고 이곳에서 가야금·꽃꽃이 등을 가르치거나 불우 청소년 선도활동을 하며 고뇌를 이기려고 안간힘을 썼다.

지난 88년엔 문학 소녀의 재질을 살려 백수린이란 필명으로 「그래도 봄은 오는데」란 자전적 에세이집을 펴내기도 했다.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면서 세인의 관심에 잊혀져가던 백씨는 12·12사태 10주년이던 지난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준비중이란 소문이 나 다시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백씨는 지난해 12월3일 『남편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며 전·현직 대통령 2명을 포함,12·12사태 당시 신군부 주도세력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었다.

이후 백씨는 부산의 유력기관장·기관원들과 남편의 육사 동기생들로부터의 회유와 협박에 시달려 극도의 신경쇠약 증세를 보여 영도구 해동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12월12일에는 병원에서 돌연 소송제기 유보 의사를 밝혀 「외부 압력설」 등 온갖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백씨는 건강상 이유외에 『종교인으로서 용서하는게 옳을것 같다』는 소제기 포기 이유를 밝혔다.

백씨는 또 지난 3월29일 자신이 운영하는 불교 자비원 부설 바둑교실 원장 김두열씨(42)로부터 심야에 폭행을 당했고 김씨가 『기무사(전 보안사)와 안기부로부터 압력과 함께 1억5천만원의 위로금을 받고 소송을 포기했다』고 폭로,또 한번 곤욕을 치러야 했다.

이때 세간에는 김씨의 폭행사건이 당시 부산고법 김모 판사(38)와의 염문설 등 복잡한 남자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소문까지 나돌아 이중의 고통에 시달렸다.

이후 백씨는 주변의 온갖 억측으로 신경쇠약 증세가 더욱 악화돼 신경안정제를 상복하면서 폭음생활을 해온것으로 알려졌다.

소문 때문에 고통을 받은 백씨는 지난 현충일에 남편 묘소를 참배한뒤 『죽어버리겠다』고 말하는 등 주변 사람들에게 세상을 비관하는 말을 자주해왔다.

아직 자살인지 실족사인지 징확안 사인은 가려지지 않았지만 자신의 수필을 통해 「인동초와 같이 한 겨울을 모진 바람속에 꿋꿋하게 서있는 12월의 여인」이 되기를 갈망했던 백씨는 모진 세파속에 화제만 뿌리고 괴로웠던 생을 마감했다.<부산=박상준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