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과거…화해·협조” 변화뚜렷/“독분단 미·소 견제전략 산물” 분석도지난 22일은 나치독일군의 소련침공 3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날 독일에서 있었던 각종 기념행사는 시대상황과 양국관계의 엄청난 변화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날 상오 베를린근교 포츠담시에서는 양국군 전몰장병 묘지에서 합동헌화추모식이 거행됐다. 이 추모행사에는 폰·바이체커 독일대통령과 데레초프 독일주재 소대사,블라코프 동독주둔 지역사령관 등이 참석했다.
추모식 연설에서 폰·바이체커 대통령은 『역사상 처음으로 승자와 패자없이,그리고 외부의 강요없이 유럽의 평화 생존질서를 창조할 수 있는 기회를 맞고 있다』고 양국간의 화해와 협력을 강조했다. 그는 포츠담을 참배장소로 택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자신이 41년 6월22일 포츠담 보병대의 소대장으로 소련침공군의 선두에 섰음을 상기시켰다.
소련에서도 예년과 같이 각종 기념행사가 있었다. 여기서도 변화는 뚜렷이 엿볼수 있다. 소련 최고회의는 2천7백만 전몰장병을 위한 묵념에 이어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기념사를 들었다. 이 기념사에서 고르바초프는 『전쟁중 소련국민들이 보여주었던 단결을 당면한 난관극복을 위해 다시 이룩하자』고 촉구했다. 전쟁을 도발했던 독일에 대한 부정적 언급이나 「촉구」는 없었다.
이번 소련침공 50주년을 앞두고 독일 언론들은 다양한 특집시리즈를 통해 역사적 재조명을 시도했다. TV들은 양국 참전장병들의 회고와 기록사진 등을 통해 당시의 참상과 교훈을 다시 확인시켰다.
이같은 언론의 재조명작업에서 주목되는 것은 「전후상황」의 근본적 변화와 「새로운 출발」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지는 50주년기념 사설에서 1941년 독일의 볼가,돈강 침공으로 비롯됐던 상황은 1990년 소련의 엘베강변으로부터의 철수로 종식됐다』고 규정했다. 이어 『오늘날 세계상황의 기초는 1941년이나 1945년이 아니라 소련과 중동부 유럽의 혁명』이라고 강조했다.
이 사설은 특히 전후 독일분단이 나치만행에 대한 처벌이나 강대국간의 담합의 결과가 아니라 미소간의 상호 견제전략의 소산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즉 미국은 소련의 서유럽 접근을 막고자 했고 소련은 서유럽의 동구접근을 저지하려 했기 때문에 중간에 위치한 독일의 분단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 사설은 소련과의 화해 및 협력의 당위성을 전례없이 냉철한 논리로 강조하고 있다. 특히 독일의 「과거」와 「독소유착」에 대한 주변국의 경계를 의식하는 조심성을 벗어 던진듯한 자신감이 두드러진다.<베를린=강병태특파원>베를린=강병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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