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해동안에 다섯차례나 선거를 치러내자니 어찌보면 여간 성가시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시·도의원선거 결과 드러난 높은 기권율,곱지만은 않은 여당에 대한 몰표,쪼가리난 야당에 대한 분노표시 등등은 흙탕물 선거의 어려움과 유권자의 갈등과 방황을 잘보여준다 하겠다.어느 여론조사 결과는 유권자들의 절반이 높았던 기권율을 정치불신 탓으로 꼽았다고 한다. 또 여당 압승원인도 여당지지보다는 시국안정 희망과 기권사태 탓으로 돌리고 있고,후보자 지지기준에 대해서도 사람됨됨이(43.6%) 경력과 능력(19%) 순이었다고 한다.
그러고보면 정치란것도 결국은 정치하는 사람들의 인격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 사람들의 됨됨이가 제대로이고 국민적 갈증을 풀어줄수 있는 건실한 대안을 마련할 정도의 능력이라도 갖췄더라면,이번처럼 뜻밖의 선거결과나 선거후 야당가에 불어닥치고 있는 엄청난 지각변동사태는 모면할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정치가 도무지 제정신이 아니었으니 유권자들도 정치염증으로 기권사태를 일으키다못해 정당이나 사람보다 눈에 보이지않는 안정이라는 쪽으로 표를 던졌을 것이다.
요즘 미국에서는 때마침 「인격의 문제」라는 제명의 책이 충격과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모양이다. 워스컨신대 역사학교수 토머스·리브스가 쓴 이 책은 지금껏 발랄한 젊음,패기와 비전으로 일세를 풍미했던 케네디 대통령의 신화를 혹독하게 깎아내리는 내용. 저자는 책의 제목이 말해주듯 정치인 케네디는 도대체 인격적으로 문제가 많다고 주장한다. 의회진출을 위해 돈공세와 뇌물,여론 및 이미지 조작 등의 기만술을 서슴지 않았고,지나치게 여자들을 좋아하고 마피아헌금마저 불사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케네디의 인격적·도덕적 결함은 『훌륭한 친구가 언제나 꼴지를 하게 마련』이라는 돈많고 파렴치했던 아버지의 약삭빠른 현실관 주입때문이라고 저자는 분석했던 것이다.
케네디의 후임 존슨의 검은 정치적 행적에 관해서도 「출세의 수단」이란 저서가 이미 나와있다. 거짓과 조작 및 매표까지 불사하며 정치적 출세를 거듭한 존슨의 정치적 행보를 그 책은 민주정치에 대한 「약탈」로까지 규정했던 것이다.
어찌보면 미국과 같은 민주정치 선진국에서조차 유명 대통령의 인격이 새삼 도마위에 오르고 선거책략이 약탈로까지 난타당하는 마당이면 선거에서 사람뽑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우리도 미루어 짐작할만하다.
우리 선거풍토 얘기를 하자면 정치자금이 양성화,엄격히 감시당하는 미국과는 비교가 못된다. 이번 시·도의원 선거의 경우 후보자를 인품·능력보다 헌금액수로 결정하는 사실상의 「입찰제」마저 비일비재했었다.
또 후보자의 돈줄을 볼모로 삼아 지자제선거를 마치 닥쳐올 「대권」 선거나 14대 의원선거의 예행연습정도로 삼았으니 선거는 애시당초 뒤죽박죽이 안될수가 없었다. 전문성을 살려 오순도순 소중히 키워낼 「지방자치」를 선동과 혼란조장의 「체제전복」과 동의어로 알고있을 정도의 야당가의 한심한 시국인식과 행동하는 욕심. 일찌감치 자당의원 한명을 희생양삼아 면죄부를 받은양 해놓고,상대당의 비밀통장까지 들춰낸 선제공격으로 기선을 뽐낸 개혁부진의 여당이 아니었던가.
「무책이 상책」이라는 말이 있긴 있다. 어찌보면 약속했던 개혁도 미룬채,분명한 혁명세력의 발호에 정당한 공권력조차 제대로 행사못한채,머뭇거리다 뜻밖의 몰표를 받고는 표정관리에 마저 신경을 쓰고 있다는 정부·여당의 「횡재」를 이밖의 무슨말로 풀이할수가 있을까 싶다. 아마 그래서 대통령도 『일을 잘해서 지지를 얻은 것으로 착각·자만 말라』고 이례적으로 강조했을 것이다.
개혁부재의 대안은 고사하고 실명제를 입으로 주장하면서 비밀통장이 쏟아져 나온 제1야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배신감은 선거로 호되게 치렀다 치자. 분명하고 추상같은 유권자들의 심판결과를 보고서도 여전히 욕심과 명분사이를 교묘히 줄타기하는 옛버릇이 왜 또 발동되고 있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을 지경인 것이다.
유권자들도 지금 괴롭기는 누구못지 않다. 민주정치의 「게임 룰」과 결백을 가차없이 찢어대는 정치권의 무한정한 약탈에 속수무책일수만은 없어 「안정」을 어쩔수없이 택했으나 지금부터가 더욱 마음쓰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있다. 여당이 안정선택의 의미를 「표정관리」 차원 이상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 품격과 안정과 개혁의 정치를 제대로 이끌수 있을것인지 마음을 놓지 못한다. 사실 안정이란 어디까지나 총론일뿐이지 현실을 고쳐나갈 구체적 각논은 아니기에 여당의 거듭남을 주목하고 있고 아울러 여당을 견제하며 현명한 대안을 내놓을수 있는 야권의 겸허한 전열정비에 마냥 초조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유권자들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는 것도 결국 인격의 문제가 될것이다. 정치판의 사람들 됨됨이가 제대로 되어있다면 이제부터라도 국민적 신뢰를 회복,제대로 정치할 채비를 서둘러 마땅하다. 그렇지 못할때 앞으로 줄이은 선거에서 어떤 뜻밖의 결과가 나올지 누구도 장담할수 없을 것임은 너무나 자명하다. 이번 선거의 교훈을 모두가 가슴에 새겨둬야겠다.<박승평 논설위원>박승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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