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독일의 수도 베를린으로 의회 및 정부를 옮기기로한 지난 20일의 의회결정에 대해 22일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너지는 「역사적 결정」이라고 논평했다. 그리고 『6월20일은 독일통일이 완성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규정했다.독일 최고권위지의 이 사설은 의아함을 안겨준다. 일견 당연한듯한 의회결정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고,특히 이미 1년전 이룩한 통일을 새삼 「완성」됐다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서독의 금융수도 프랑크푸르트에서 발행되는 이 신문이 그동안 베를린으로의 의회·정부 이전에 부정적 입장을 취해온 것을 감안하면 의아함은 한층 더해진다.
「역사적인」 의회결정자체도 표면적인 관찰만으론 예상을 벗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 통일이래 치열하게 전개돼온 의회내의 「베를린본」 논쟁은 마지막 순간까지 본잔류 지지세력이 우세한 것으로 알려졌었다. 이를 믿은 쪽에서는 최소한 의회결정이 미뤄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의회내 분위기」와 일반의 예상을 뒤집은 베를린 이전결정과,언론의 표변한듯한 반응은 일견 치열한듯 했던 「베를린본」 논쟁자체가 일종의 「위장된 논쟁」의 성격을 가진 것이었음을 확인케 한다. 적어도 독일의 정치 엘리트계층 내부에서는 통일독일의 「자아확인」과 「자기주장」에 대한 외부의 경계를 의식,45년간 외부세력에 점령됐던 「독일민족의 수도」로의 복귀여부를 마치 자유로운 논쟁에 내맡긴듯한 자세를 짐짓 취해온 것으로 보인다.
베를린에 대한 주변국가들의 경계는 쉽게 확인된다. 영국의 권위지 인디펜던트는 베를린 이전결정을 『비스마르크의 망령이 본을 자유민주주의의 산실로 만든 아데나워의 정신을 눌렀다』고 논평했다. 프랑스 르 피가로는 『42년간 성실히 봉사해온 본은 이제 벽촌으로 되돌아 갈것』이라고 「애도」했다.
그러나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너는 『이제 새로운 독일은 반주권상태의 과거를 완전 청산,세계속의 달라진 지위에 걸맞는 역할을 수행할 것임을 천명했다』고 썼다.
베를린 이전결정은 통일독일의 「자기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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