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지서 유서공개… 자기변명·저주로 일관/죽기직전까지 중국대권 차지 야심 못버려지난 5월 자살한 모택동의 미망인 강청이 등소평등 중국 지도자들을 신랄하게 비난한 유서를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20일 발매된 일본 시사주간지 주간문춘은 「신뢰할만한 중국정부 관계자」로부터 강의 유서의 내용을 입수했다면서 유서의 존재와 내용이 공개되는 것은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 의하면 유서의 분량은 20매 정도로 이 유서가 언제 쓰였으며 어디서 발견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내용은 철저한 자기변명과 모택동 이후의 중국 지도자들에 대한 저주로 가득차 있다.
저주의 화살은 최고 실력자 등소평에게 맞추어져 있다.
『등은 허풍선이 대왕이다. 그는 모주석의 면전에서 영원토록 번안은 하지않겠다고 약속하고도 정권을 잡은뒤 모주석과 중국공산당과 인민을 배반했다. 등아,기뻐하는 것은 아직 빠르다. 그대는 애국학생을 학살한 주모자이고 피고다. 등아,결코 좋게 죽지는 못할 것이다』
모주석의 부인으로 「여제」로 불렸던 자신을 반혁명분자로 몰아 죽을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던데 대한 원한이 가득하다.
다음 화살은 자신의 체포를 명했던 화국봉을 비롯한 호요방·조자양 등의 이름을 열거,「개들이 서로 물어뜯으며 싸우는」 정황이라고 비유하면서 『흑이 흑을 먹은 그들의 죄는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고 매도했다.
유서의 반 이상은 자신을 포함한 이른바 「4인방」이 온 중국을 광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던 문화대혁명에 관한것으로 그 내용은 철저한 자기 변명이다. 특히 왕홍문 도문원에게 강한 비난을 퍼붓고 『4인방 이라고들 하지만 나만이 옳다. 나는 다른 3명과는 다르다』는 요지이다.
물론 문화대혁명이 반혁명이 아니라는 주장도 잊지않았다.
또 중국 공산당에 대한 격렬한 비난도 상당한 분량이다. 배우 출신의 「여제」가 온 몸에 암종양이 번진 것을 비관,77세를 일기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쓴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만큼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표현으로 일관돼 있다고 한다.
이 잡지는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강청의 옥중생활도 소상히 보도했다.
강청은 오랜 재판끝에 81년 사형선고와 함께 2년간의 집행유예 및 정치권의 종신박탈 판결을 받고 복역중 83년 무기형으로 감형됐었다.
수감됐던 감옥은 장개석 국민당 정부시대에 만들어진 정치범 전용 진성감옥. 북경 서부지역 교외에 있는 이 감옥은 살아서는 나올 수 없는 감옥으로 알려져있지만 그녀는 84년 5월4일 극비리에 산채로 감옥을 나왔다.
젊어서 자궁암을 앓았던 병력에 후두암 식도암까지 겹치자 중국정부는 모택동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눌)의 집에서 치료를 받도록 배려해준 것이다.
그러나 89년초 중국의 민주화운동이 시작돼 정치범 석방서명운동의 물결속에서 한 잡지가 강청의 병보석 사실을 폭로하자 중국정부는 그해 3월 강을 재수감했다. 5년가까운 보석기간중에도 병세는 호전되지않아 재수감된 뒤에도 차에실려 병원과 감옥을 오가는 생활의 연속이었던 타고난 히스테리 성격에 노이로제까지 겹쳐 독방속에서 「경제학 서적을 넣어달라」느니 「레닌전집을 읽고 싶다」느니 하는 투정을 계속했고,때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온종일 지껄이기도 했다.
병상이 악화되자 당국은 지난해 3월부터 다시 딸집에 나가 살도록 허락했으나 절망적인 병세와 깊어진 노이로제,게다가 딸과의 사이가 나빠져 지난 5월14일 딸집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하고 말았다.
중국공산당 간부 등에게만 배포되는 비공개자료 「내부참고」에 의하면 강청은 죽기 직전까지도 다시 중국천하의 대권을 거머쥐려는 야심을 버리지 못했다고 한다.
시대의 흐름에 등을 진채 허황된 꿈만 꾸었던 고독한 여제의 죽음은 아직 너무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동경=문창재특파원>동경=문창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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