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의 정치한국인의 뇌물은 이제 국제적인 명물이라고 할만하다. 지난 5월초 한국인의 뇌물을 미국의 판사도 인정해줬다는 웃지못할 글이 한 석간신문에 실렸었다. 탈세에다 1만달러의 뇌물을 쓴 교포에게 『한국에서는 뇌물을 주는 것이 관행으로 돼있기 때문에』 이러한 문화적 차이를 참작,가볍게 선고했다는 것이다.
피는 속이지 못하는것 같다. 시베리아의 벌목장에서 일하는 북한의 노동자들이 오토바이 쌀 고기통조림 등을 밀수하려다 들통이 났다한다. 지난달 15일 모스크바 방송이 보도한 이 사건은 북한 노동자들이 밀수를 눈감아 달라고 소련의 세관 관리들에게 뇌물을 줬다는 얘기다.
그러나 뇌물이 효험이 없자 집단 난동을 일으켰다한다. 어쩐지 똑같은 생김새의 「열전」의 모습을 보는것 같다.
그러니까 뇌물외유나 수서택지 사건 아니면 페놀 수돗물이나 독가스 직업병같은 사건은 「재수없게」 들통난 사건일 뿐이다. 점잖게 말해서 관·경유착이요,정·경유착이라지만 돈보따리가 맺어준 유착관계는 이 사회의 구석구석에 널려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투표를 이틀 앞두고 지금도 엄청난 돈잔치가 벌어지고 있다. 직할시나 도의 의원의 되면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진 몰라도,몇억이라는 뭉칫돈 뿌리기 경쟁이 붙었다.
한때는 5억원을 뿌려야 당선된다고 해서 「5당4락」이라더니,이제는 10억을 뿌려야 한다고 해서 「10당7락」이라고 한다했다. 어느 당은 선거전서 몰리는 지역에 「비상용 실탄」을 투입한다는 신문기사도 있었다. 「실탄」이란 물론 총알이 아니라 돈뭉치다. 출마를 포기하면 1억5천만원을 주겠다고 제의한 사람도 있다고 한 후보가 폭로했다한다.
○거지가 거드름 피우기
제정신이 있는 사람치고 「되로 받고 말로 갚는」 거래를 할 사람은 없을것이다. 하지만 알량한 선물이나 몇푼의 돈봉투,기껏해서 공짜 온천여행에 「주권자」의 한표를 팔아버린다면 「홉으로 받고 가마니로 갚는」 거래가 될것이다.
실속없는 선거 인플레에 땅값·집값·물가가 뛰고 보면 밑지는 장사가 아니라,신세 망치는 장사가 될것이다.
그런데도 거지처럼 손을 내미는 유권자 등쌀에 출마를 포기한 사람이 있더니,이번엔 2층에서 뛰어내린 후보자가 있었다. 술대접 받고 돌아가다 물에 빠져 목숨을 잃은 유권자도 있다니 한심하다고 할수밖에 없다.
표 하나를 담보로 음식과 술대접 받고 어깨를 편다면,배부른 거지가 거드름 흉내내는 것과 다를바 없다. 이들 거지같은 유권자들이 눈을 뜨지않는 한 민주주의 헛소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또 유권자를 어리석은 거지꼴로 만들어놓고,돈벼락을 치는 졸부들이 주권자의 대표로 공직을 차지하는 한 정의로운 정치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땀흘려 떳떳이 번 돈이라면,「봉사」 해야되는 자리를 놓고 물뿌리듯 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뿌린 돈은 회수하고,가능하다면 몇갑절 노다지를 캐내려할것은 뻔한 이치다.
지난날 총칼에 빼앗겼던 한표의 주권을 이제는 돈봉투나 음식대접으로 맞바꾸는 금권정치가 돼서는 안된다. 사람들이 하루 일당 몇만원의 선거운동원으로 몰려,농촌에서는 몇만평의 보리밭에 불을 질러야되는 돈잔치 바람을 청산해야만 이 나라의 정치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다.
수많은 젊은 이들의 목숨과 정치적 자유를 바꿔놨지만,정의로운 민주정치를 발전시킬 책임은 바로 유권자에게 있다.
○정치자금과 선거공영
왕조시대에도 주권자인 임금에게 사사로이 올리는 물건을 「뇌물」이라고 공박한 일이 있었다. 선조임금이 즉위한 해 섣달 초아흐레의 경연에서 고봉 기대승은 말했다. 『수령이 임금을 섬기는 마음이 간절하다해도 스스로 거기에는 명분이 있고,또 법으로 금하고 있는 것인 즉 어찌 사사로이 재물을 바칠수 있겠습니까.… 군완은 지공무사해야하며 천지일월과 같이 크게 맑고 밝아야하는데 어찌 사사로이 물품을 받아들일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유권자도 「주권자」라면 정체불명의 돈봉투에 놀아나 신세망치는 장사를 탐내는 어리석음에서 깨어나야 한다.
또한 여 야 모두 천하공당이라면 정치자금 제도를 공개 입법해서 최소한의 정치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는 선거공영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권세를 쥐고 있는 정부·여당이 정치자금의 꿀단지를 독점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모든 정당에 대한 기회균등의 원칙과 정당 재정의 공개를 법으로 제도화해야할 것이다.
그때 비로소 선거관리 위원회가 정한 1천 몇백만원의 선거비용 한도가 지켜질 것이다. 30년만에 주권자의 권리를 행사하는 지방선거가 그런 방향으로의 첫걸음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틀뒤의 선택이 현명하다면 그것을 「선거혁명」이라 할것이다.<논설위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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