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귀정양 장례가 긴장속에 무사하게 치러졌다. 지난달 25일 숨졌던 김양은 장장 18일만에야 비로소 안식을 찾은 셈이 됐다. 장례날도 학교로의 운구를 놓고 유림측의 반발이 거세었고,노제때문에 또 한차례 경찰과 대책위간에 실랑이가 있었던 것이다. 어린 김양을 떠나보내며 참담했던 사망과정과 그후 빚어졌던 우리사회의 우여곡절을 생각하면 국민들은 누구나 아픈 가슴을 달랠길이 없다. 그래서 김양의 명복을 비는 마음에 못지않게 이제 더 이상 젊은이의 불행한 죽음이나 그 주검을 볼모로한 폭력대결 풍조가 생겨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돌이켜보면 지난 4월26일 강경대군 사망으로 촉발된 전국적인 시위와 폭력화투쟁은 엄청난 사회적 혼란과 상처를 남겼다. 그날 이후 또다른 젊은이들의 분신사태가 잇따르면서 그 주검들을 볼모로 한 가투로 지금까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극렬재야의 끝모르는 폭력투쟁과 경찰의 진압공방으로 사회질서는 어지러울대로 어지럽혀졌고,국가적 공무나 국민들의 일상도 지장이 많은 등 우리 사회는 낭비적 표류를 거듭해왔던 것이다. 총리와 내각이 갈리고 국가공권력마저 폭력앞에 제대로 행사되지 못하는 위기에 몰리면서 국민들의 불안은 가중되다 못해 급기야 분노로 표변되기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젊은이들의 시위를 심정적으로 이해하며 정부의 실정을 함께 나무랐던 국민들도 시신을 볼모로한 거듭된 과격폭력투쟁을 보면서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위기를 감지했고,신임총리에 대한 패륜적 폭행사태 앞에서 드디어 완전히 등을 돌렸던 것이다.
사실 김양 장례를 18일이나 끌었던 것도 지루했던 사인공방과 대책위측의 부검거부 등 시신볼모투쟁 때문이었다고 할수있다. 경찰진압에 쫓긴 나머지 압사당한 김양의 죽음은 애처롭고 가슴아픔 것이었지만,여전한 볼모투쟁은 역겨움을 안겨줘 과격폭력투쟁을 더이상 용인하지 않으려는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게한 감이 없지않다. 그러한 합의는 사회질서를 지키기위한 공권력의 행사는 집행돼야 한다며 법적요건인 부검실시를 촉구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러한 국민적 자각에 힘입어 올바른 시위문화가 정착하고 의사표시를 법질서의 테두리안에서 평화적으로 해야한다는 분위기가 차츰 사회적으로 자리잡혀 가고 있는 시점이다. 엄청난 희생을 치른끝에 얻은 이 값비싼 교훈을 정부는 앞장서서 부단한 민주개혁으로 이끌어야하고,국민들도 단호한 각오로 지켜 비생산적 폭력대결이 더이상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할 책무가 있다하겠다.
어떤 명분을 내걸었든 폭력은 이제 이땅에서 사라져야 한다. 폭력사용의 유혹을 극복하는 것만이 불행하게 간 김양과 같은 젊은이들의 넋을 달래고 우리사회에 화합과 개혁의 기운을 제대로 심어나가는 첫걸음이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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