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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한 경제주의 발상/안병영 연세대 사회과학대교수(정치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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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한 경제주의 발상/안병영 연세대 사회과학대교수(정치진단)

입력
1991.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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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위해선 민주·복지체제 키워야최근 체제전환의 소용돌이속에 있는 동구 여러나라에서 실시한 여론조사들을 보면 우리의 관심을 끌만한 대목들이 많이 발견된다. 그중 하나는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나라가 어느 나라냐는 물음에 관한 것인데,놀랍게도 대체로 같은 대답이 나온다. 그 나라들의 이름은 스웨덴,핀란드,그리고 오스트리아의 세 나라들이다. 세나라 모두가 지난 수십년간의 동서냉전의 와중에서 탈냉전의 요람으로 자존을 지켰던 나라들이고 또 무엇보다 하나같이 대표적인 「복지국가」들이다. 이러한 대답에서 우리는 나름대로 오늘의 동구인들의 정서를 읽을 수 있을 듯하다.

동구인들은 한결같이 소비예트형 사회주의체제의 「역사적 몰락」은 필연적이며,앞으로 인류는 그러한 유의 「사회주의 실험」을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사회주의 질서속에서 살아온 그들은 자신들의 체제가 하루아침에 「자본주의화」­이를테면 미국식으로­되는데 대해 적지않은 의구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위의 세 나라는 민주적 정치과정과 시장경제적 메커니즘을 다같이 존중하면서 분배의 정의를 실천하고 있는 민주·복지국가들이므로 그들이 더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널리 알려졌듯이 이들 세나라들은 나라마다 얼마간의 편차가 있으나 서로 많은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세나라는 모두 「작고 잘사는 나라」의 대표적인 예들이며,인류 모두가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세가지,즉 자유,평등,그리고 높은 「삶의 질」을 고르게,또 최상의 수준으로 성취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대체로 이들 나라들의 경우,생산과정은 시장경제의 효율성과 역동성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면서,분배과정은 보다 사회정의와 형평에 걸맞게 운영되고 있다. 완전고용과 물샘틈 없는 사회보장체계,무상교육,노사간의 산업평화,그리고 무엇보다 적은 빈부격차 등 이들 나라들을 특징지우는 모든 조건들이 우리가 알고있는 여느 자본주의 국가와는 크게 다르다.

이들 나라들을 관류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공생」의 원리이다. 「내가 잘살기 위해서는 남도 잘살아야 하며,혼자만 잘 살려고 발버둥치다가는 다같이 죽게 된다」는 철리를 이들은 체득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사회의 두 주역인 노사간의 놀랄만한 「계급협력」도 바로 여기에서 나온 것이며,전문경영인이나 의사가 고율의 세금을 감수하는 것도 역시 이러한 사유의 결론이다.

동구인들의 체제선호경향을 보면서,북한동포들을 생각해 보았다. 언젠가 우리가 통일이 되는 상황이 되면 그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어떤 체제를 선호할까. 또 우리의 정치지도자들은 이 문제를 지금 앞서서 걱정하고 있을까.

근자에 사석에서 흔히 듣는 이야기중에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독일식 통일에 대한 자신감」이고,또하나는 「남북이 열리면 수백만의 북한동포가 밀려 올테니 걱정」이라는 것이다. 둘다 전혀 일리 없는 이야기는 아니나 이런 말을 정부관계자나 책임있는 지식인들 입으로 들을 때면 입맛이 씁쓸하다. 전자의 발상의 근저에는 세계조류가 우리에게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으므로 세상이 좀 열리게 되면 남북한간의 엄청난 경제력의 격차때문에 북한이 조만간 동독의 재판이 될수밖에 없으리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후자의 주장에도 다분히 「경제주의적 발상」과 체제에 대한 어줍잖은 오만이 함께 작용한다.

그러나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한 것이 단순히 서독의 경제력 때문이라고 쉽게 결론짓는 것은 무리한 얘기다. 오히려 끝내 동독이 스스로 「안락사」를 결심한 것은 서독이라는 체제가 과시하는 엄청난 「민주·복지」 능력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 무서운 저력앞에 동독이 손을 들고 만것이다.

서독은 오랜기간 통일을 겨냥한 「큰정치」를 해왔다. 다시 말해 서독은 가치지향과 체제잠재력에 있어서 언젠가 동독을 포용하는 넉넉한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꾸준한 노력을 해온 것이다. 그런 독일도 요즘 엄청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수십년 동안 다른 체제에서 다른 삶은 영위하던 사람들이 함께 만나 산다는 일이 실로 얼마나 어려운가를 웅변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우리는 사회주의의 붕괴와 독일통일이라는 역사적 사건앞에서 우리 체제의 우월성을 다짐하기에 앞서 우리 체제가 안고 있는 취약점을 겸허하게 걱정해야 할 것이다. 아직도 우리의 많은 지도층들이 경제주의적 발상에 사로잡혀 문제의 핵심을 간과하는 것도 큰 문제다. 「경제발전」만 하고 북방정책에 열을 올리면 통일이 그냥 선사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만으로는 통일은 고사하고 국내의 사회통합도 제대로 이룰수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매일의 삶속에서 확인한다. 오히려 통일을 앞당기는 것은 우리 체제의 「민주·복지능력」의 고양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이제 우리 체제를 언젠가 북한동포도 수용할 수 있는 큰 그릇으로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이를 위해서 이제 우리는 먼 안목에서 「공생」을 결의해야 할 때다. 그것을 통일은 차치하고서라도 우리사회가 오늘 힘겹게 앓고있는 체제위기의 극복을 위해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한 슬기를 얻기 위해서 우리는 위에서 소개한 스웨덴,핀란드,그리고 오스트리아가 추구하는 체제모형을 좀더 가까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계는 지금 그 세나라중의 하나인 오스트리아가 낳은 천재음악가 모차르트서거 2백주년 행사로 온통 축제분위기이다. 또 내년이면 한국과 오스트리아는 수교 1백주년을 경축하게 된다. 우리는 오스트리아에 수출을 얼마나 더할수 있을까 따져보기에 앞서,왜 동구인들이 이 나라를 동경하는지 진지하게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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