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안보문제는 사라졌는가/김경원칼럼(기류조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안보문제는 사라졌는가/김경원칼럼(기류조류)

입력
1991.06.12 00:00
0 0

최근에 안보문제를 걱정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전쟁위협이 없어진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은 있지만….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그만큼 변했다고 볼수있다. 냉전이 끝났기 때문에 평화가 정착될 것으로 기대하는 심리도 있고 북한의 외교적 고립과 경제적 침체현상 때문에 우리의 자신감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안보는 남북한간의 문제만은 아니다. 통일된 이후에도 안보문제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안보문제를 보다 넓은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냉전은 끝났지만 미국과 소련은 아직도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도 군비감축은 커녕 오히려 유럽에서의 재래식무기 감축의 결과로 소련은 상당수의 탱크와 장비들을 우랄 동쪽으로 이동해 놓고 있다.

더욱 역설적인 것은 냉전이 종식되면서 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군사비는 오히려 증가추세를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1990년 중국의 군사예산은 15%,대만은 9%,인도의 경우도 9%,태국은 15%,싱가포르는 12% 증가되었다. 일본은 1981년 2.5% 증가율에서 1990년 5%에 이르기까지 계속 늘어났는데 절대액이 크므로 상당히 높은 증가율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니까 냉전이 종식되어 여러곳에서 긴장이 완화되고 관계개선이 이루어진것도 사실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아시아 지역에서 더 많은 파괴력이 축적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군사력 자체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오늘날 많은 나라들이 국내 통치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우 체제위기는 심각하다.

소련은 이미 연방체제가 붕괴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은 고르바초프의 권력을 「잉여권력」이라고 부르는데 공화국들이 행사하고 남은 권력만을 중앙에서 행사할수 있다는 뜻이다.

소련 제국의 붕괴 과정은 상당한 세월을 두고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오토만 제국의 붕괴 과정이나 프랑스제국,대영 제국 등의 몰락과정을 보면 소련 제국의 붕괴도 하루 이틀에 종결될수 있는 성격의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수 있다.

앞으로 소연방 체제의 와해현상은 예상하기 어려운 여러가지 문제들을 제기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는 소련 영토에 흩어져 있는 핵무기는 어떻게 될것인가 하는 점이다. 만일 핵무기가 여러 자치공화국들의 손에 들어가게 되면 무서운 핵무기 확산의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중국의 위기는 이념의 위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공식적으로는 사회주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 중국 인민은 관료주의적인 스탈린주의와 모택동의 문화혁명이라는 광신적 평등주의를 거쳐 등소평의 실용주의적 근대화 정책에 이르기까지 이데올로기의 혼란을 체험함으로써 지금은 일종의 이념적 허무주의 같은것을 느끼고 있다. 따라서 이념적 사명감을 상실한 공산당은 내부적으로 부패,분열되어가고 있고 권력계승의 제도적 장치마저 마련돼 있지못한 사실을 생각한다면 중국이 당면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낙관하기가 쉽지않다. 중국의 경제인구,자연환경의 문제들은 말할 필요도 없이 이상과 같은 통치의 위기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통치위기와 경제적 실패는 통제할수없는 인구이동이라는 안보문제를 제기한다. 이미 유럽에서는 소련 경제의 파탄으로 소련 사람들이 유럽으로 몰려올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사실 아시아에서는 이미 「월남의 보트 피플」이라는 표현이 생길정도로 난민문제를 겪은 일이 있지만 앞으로 중국 인구가 경제적 혼란으로 움직이게 된다면 이것은 걷잡을수 없는 사태가 될것이다. 북한 체제가 무너지는 경우는 독일의 예를 생각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것인가 짐작할수 있다.

그밖에도 자연환경의 훼손과 파괴로부터 오는 안보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태환경의 파괴로부터 오는 재앙은 국경선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북한에서 핵사고가 발생한다면 그 결과는 남한에까지 미치게 될 것이며 중국에서의 생태환경의 훼손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궁극적으로 평화와 안정을 파괴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것은 광신적 대중이념의 출현이다. 이미 이란에서 보았지만 근대화가 요구하는 합리주의 정신이 사회의 전통적 가치관을 파괴하고 인간들의 깊은 실존적 갈망을 충족시켜 주지 못할때,근대화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일종의 종교적 광신주의와 배타적 민족주의 이념이 「대중의 마약」이 되는 위험이 있다.

특히 사회주의가 몰락하면서 이것을 대치할수 있는 폭넓은 자유주의 사상이 뿌리를 내리지 못할때,사람들은 그릇된 우상을 섬기고 싶은 충동에 사로 잡히기 쉽다. 그렇게 되면 개인과 개인,국가와 국가사이에 관용과 절충이 불가능해지고 이성을 상실한 인간들의 투쟁과 충돌만이 있게된다. 역설적인지 모르지만 바로 이와 같은 광신적 이념과 독선주의야말로 냉전이후 국제안정을 파괴할수 있는 가장 무서운 위협이라고 할수 있다.<사회과학원 원장·전주미대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