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재무부장관은 「돈줄의 조율사」다. 미·일·EC같으면 중앙은행 총재가 이 막중한 역할을 맡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재무부장관이 거머잡고 있다. 어느나라이건 경제정책을 이끌어가는 양대정책 수단은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이다. 재정정책은 세입·세출양면에서 경직성이 높다. 세법의 제정이나 개정·폐지는 물론 지출사업의 신설이나 변동에도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한국의 경우는 국회가 알고서 그러는지,몰라서 그러는지 몰라도 물렁하기가 짝이없지마는 미국의 경우는 까다롭기가 「지옥의 사자」와 같다. 따라서 외국정부도 경제를 조정하는데 금융정책을 선호한다.그러나 중앙은행이 한국에서처럼 유순하지 않다. 한국의 재무부장관은 이런 의미에서 「돈줄의 조율사」가 아니라 「돈줄의 황제」다.
이런 막강한 경제적 힘을가진 이용만 신임재무부장관이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오는 7월부터 연간 총통화증가율(M2) 목표를 당초의 17∼19%보다 2∼3%포인트 올려,하반기중 19∼22%의 수준으로 끌고가겠다고 말했다. 이재무는 재무부 이재국의 「대부」라고 할정도로 금융정책에 밝고 리더십이 평가받고 있다. 민간금융기관에도 적지않은 경험이 있어 실물금융에도 밝다. 현시점에서 금융통 제1인자라고 할수있는 이재무가 총통화증가율 2∼3% 상향조정을 공표한데는 그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올해의 정책최우선 목표를 물가안정이라고 천명해왔고 이를위해 월간 총통화증가율을 연 17∼19%선으로 묶는 등 총수요를 강력히 억제하겠다고 거듭 다짐해왔다. 이재무의 발언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정부의 인플레억제 우선정책을 뒤집어 놓는것이 아니냐하는 것이다. 일관성없는 것으로 정평나있는 정부의 정책이 또한번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재무부의 통화팽창계획은 현경제정책운영계획의 근간이 되는 종합물가안정대책의 핵을 사실상 철거하는 것이므로 지엽적인 정책수정과는 그 상징적 의미도 다르다.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불신이 위험수위에 다다를수 있는것이다. 이재무는 통화증가율목표 상향조정의 이유로 ▲경제의 실질성장률이 당초예상 7%에서 9%선으로 높아지고 ▲7월부터 일부 단자사의 은행업으로의 전환에 따라 총통화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은행으로 탈바꿈하는 단자사의 단자여신이 없어지므로 시중의 전체유동성 규모에는 변화가없어 통화량증가에 따른 물가자극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재무의 주장은 재계이익을 대변하는 전경련이 그동안 금융긴축의 완화를 위해 내세워왔던 논리를 되풀이한 것이다.
그는 재계의 주장을 수용한것이다. 이때문에 그의 『물가영향 없다』는 주장이 나중에 옳다는것이 입증될지 몰라도 지금으로서의 설득력을 갖기가 어렵다. 재무부의 추산에 따르면 총통화증가율을 2% 올릴경우 총통화 공급은 연간 1조4천억원이 추가로 늘고 3%를 올리면 연간 2조1천억원이 늘어난다. 영향이 없다하기가 어렵다. 불안한 것은 국민들의 인플레 기대심리제고다. 정부가 죄었던 돈줄을 느슨하게 푸는 것을 보고 물가잡기는 틀렸다고 생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인플레억제에는 경제 각 주체들이 희생을 치르게 돼있다.
정부는 인금인상 상한선을 10% 미만으로 설정해놓았다. 상당수의 근로자들이 이 임금가이드라인에 의해 영향을 받게 돼있다. 기업들도 그들몫의 대가를 지불해야한다. 이장관은 기업에 대해 『우선 보유부동산을 처분하거나 투자계획을 축소하는 등의 자구노력을 기울여야한다』고 했다. 재무부나 정부가 「재벌의 시녀」가 이닌것을 보여줬으면 한다.
인플레가 잡혔다는 확증이 아직 나타나지 않고있다. 이재무가 재계의 「돈」 갈증에 너무나 일찍이 굴복하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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