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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과 김일성/황소웅 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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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과 김일성/황소웅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1.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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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박준규 국회의장의 소련 방문시 일행의 일원으로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를 같이 다니면서 새삼 놀랐던 것은 소련국민의 레닌에 대한 인식의 변화였다. 고르바초프나 옐친 등 소련의 정치 지도자들이 사회주의 포기선언을 한지도 오래여서 레닌에 대한 생각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그렇게 노골적이고 감정적 일 줄은 미처 몰랐다.레닌도서관과 레닌박물관,레닌그라드시 등 레닌이란 이름이 붙은 세곳을 모두 본뒤에야 소련 국민들의 레닌에 대한 악감정이 어느 정도인가를 생생하게 느낄수 있었다.

모스크바시내 중심에 있는 레닌도서관을 둘러보면서 우리끼리 『소련을 위해서는 이 도서관이 없었어야 하는것 아니냐』고 속삭일때만 해도 혹시 소련사람들이 알아듣지나 않을까 주위를 살피곤 했었다. 그러나 도서관에 이어 박물관 관람이 끝날무렵 우리는 그것이 쓸데없는 걱정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레닌의 저서들이 1백30여개국어로 번역되었다는 등 자랑스럽게(?) 레닌의 생애를 설명했던 여자 안내인은 우리 일행에게 대뜸 『레닌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소감을 물었다.

『그는 역사적인 인물이 아니냐』는 반문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그러자 그녀는 『그러면 김일성도 역사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다그쳐 물었다. 『어쨌든 그사람도 북한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한 사람이 아니냐』고 답변했다. 그녀는 『우리는 레닌을 싫어한다. 레닌때문에 소련은 이지경으로 망했다. 김일성이 죽고 난뒤에 북한사람들도 마찬가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북한사람들은 김일성때문에 망했다고 원망할 날이 멀지않아 올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너무나 노골적인 그녀의 감정표현에 놀랐다. 『소련국민들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느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서슴없이 대답했다.

박의장 일행의 통역을 맡은 소련 외무부의 한국과 직원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더니 그 역시 『물론』이라고 답변했다. 그는 『레닌이 45년간이나 사회주의를 소련땅에서 실험하는 바람에 우리는 완전히 망했다. 우리는 실험용 토끼였다. 만일 레닌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서구의 다른나라들과 비슷하게 잘 살수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스크바의 레닌도서관,레닌박물관 관람을 계기로 레닌에 대한 소련사람들의 존경대신 반감이 깊고 넓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아이로니컬한 것이었다.

모스크바 다음 가는 소련 제2의 도시 레닌그라드에서는 반레닌 감정이 더욱 심각했다. 레린그라드라는 도시 이름을 아예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레닌이라는 말만 들어도 싫으니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을 없애고 원래의 페테르부르크나 페트로그라드로 되돌아 가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레닌이 죽은 1924년에 레닌그라드로 이름이 바뀐 이 도시의 재개명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는데 주로 젊은 층에서 반감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레닌그라드라는 시명이 국민투표에 부쳐져 다른 이름으로 바뀌어진다면 북한의 김일성동상처럼 전국 곳곳에 수없이 서있는 레닌의 동상이 박살날 날도 멀지 않으리라는 얘기도 들었다.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에서 신주처럼 떠받들고 모시던 레닌의 존재가 국민들로부터 이렇게 배척,격하당하고 있는데 북한도 아닌 남한에서는 아직도 레닌을 교과서로 삼고,심지어는 김일성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잘났다고 미친듯이 날뛰고 있으니 우리는 뒤떨어져도 한참 뒤떨어졌다는 반성을 뼈아프게 해야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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