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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대결의 악순환인가/한상진 서울대교수·사회학(사회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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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대결의 악순환인가/한상진 서울대교수·사회학(사회진단)

입력
1991.06.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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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식 총리서리에 대한 외대 학생들의 집단폭행이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불행한 일이요 충격적인 사건이다. 나라의 체면도 말이 아니다. 정총리의 얼굴에서 6공정부의 자화상을 보는것 같아 안쓰럽다. 학생운동의 도덕성도 심각한 상처를 받고 있다. 대학은 또 무엇이고 교육제도는 어떠한가. 교육의 실패가 우리 모두에게 충격을 넘어 비탄과 절망까지를 느끼게 한다.

유감스럽지만,우리 사회는 아직도 양극의 입장이 팽팽히 대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편에서는 노정권 퇴진을 외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공안정국」형 인사를 여전히 중용한다. 민주개혁을 외치는 많은 사람들은 허탈감에 빠져 갈곳이 없다. 최루탄과 화염병,백골단과 분신저항이 맞서고 있다. 현실인식에서 극우보수와 극좌진보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국민은 이 숨막힐것 같은 대결양상에 이미 싫증과 불안을 느낀지 오래다. 소모적이고 낭비적인 대결 대신 제도적이고 합리적인 개혁이 신속히 이루어지기를 원하고 있다. 양쪽의 강경노선이 보다 유연하고 실용적인 노선으로 대체되기를 진정으로 갈망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양극대결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심화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정부의 강공이 무리수를 낳고 이것이 또 다른 사태를 몰고 올 위험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오늘의 학원문제,교육문제,세대문제는 단순한 대증처방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태에 이미 와있기 때문이다.

언론보도가 유의할 점도 여기에 있다. 물론 우리는 학생운동권에 퍼진 흑백논리,반지성적 행동주의,폭력성,체질화된 모든 권위의 부정을 나무라고 계도해야 한다. 유교문화권에 있는 우리로서는 특히 스승에 대한 폭력이 대학가에서 빈발하는데 대해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이 조야한 감정의 형태로 여론화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대중 매체가 이끌어가는 감정의 소용돌이는 문제해결에 별로 도움이 안되는 또 다른 강경노선을 부추기는 것이다.

현재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감정이 아니라 인식이다. 왜 사태가 이렇게 악화되었으며 문제를 어떻게 푸는 것이 사회발전의 길인가를 냉정하고 깊이 있게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두가지 원인을 특별히 강조할 필요가 있지않나 생각된다.

첫째 민의를 수용하는 6공정부의 용량이 협소하게 변했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말해 시민사회의 변화요구와 정부의 성취능력 사이에 간격이 크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통치불가능성」의 구조적 원인이 있다.

물론 사회집단들의 요구가 터무니 없이 높은 것이기에 자제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부분적으로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 자제를 유도하기 위해서라도 정당한 요구를 수용하는 체제의 능력은 커야 한다.

이번 정총리사건만 하더라도 폭력행위 그 자체는 마땅히 규탄받아야 하지만 「공안정치」로는 더이상 안된다는 열화같은 국민여론에도 불구하고 왜 그토록 강성 이미지가 높은 인사를 총리로 임명했던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의아해하고 있다는 점을 정부는 유념할 필요가 있다.

둘째 매사를 힘으로 밀어붙이는 풍조가 강한 탓으로 서로 공유할수 있는 제도가 미비하거나 취약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보기는 인권과 법치다. 인권은 인류가 수많은 노력과 투쟁으로 쟁취한 권리로서 사회개혁의 지렛대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귀중한 제도다. 법치의 핵심은 이 권리를 보호하는데 있다고 할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정부가 인권유린에 앞장선 면이 있다. 그 결과 법치의 공평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매우 낮다. 이것의 굴절인듯 학생운동권 역시 놀랄만큼 인권에 대한 의식이 약하다.

법을 통치의 수단으로 볼 뿐 인권의 보호제도로 보지 않는다. 법을 이용하기보다 이를 무시한다. 이런 맥락에서 남의 권리와 인격을 짓밟을 수 있는 위험스런 사고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힘만능주의를 벗어나려면 교양과 상식을 가꾸고 비판과 토론문화를 고양시켜야할 것이다. 여기에 교육제도의 역할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교육제도가 만신창이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것이 실로 큰 문제다.

따라서 이번의 불행한 사건을 발전의 계기로 삼고자 한다면 교육을 살려내는데 모든 지혜를 모아야 할것이다. 우리의 교육현실은 현재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 대화없는 대학,획일주의가 판을 치는 입시교육,뒷짐지고 관망하는 교수,실의에 찬 교사로는 올바른 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다.

전교조의 상처는 또 어떻게 해소시킬 것인가. 정부는 답해야 한다. 존경했던 스승이 멱살을 붙잡혀 끌려가 해직당하는 모습을 본 학생들에게 교권의 신성함과 법의 공정성을 인정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우리 교육의 비극이며 정치의 현주소가 아닌가.

차제에 우리는 세대간의 현저한 인식의 격차를 직시하자. 50대의 생각과 20대의 생각이 얼마나 다른가를 정확히 규명하여 다리를 놓는 작업을 해야할것 같다.

이런 노력 없이 단순한 대증요법으로 학생운동권을 힘으로 제압,격리·배제시키기 위해 정부가 공안정국과 같은 강공드라이브를 계속한다면 대학은 더욱 황폐화될 것이며 정국불안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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