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때마다 젓가락으로 떠 먹여 줘야/시중끝나면 “수고했다” 팁 100불 “척척”/술 「마오타이」… 파티는 불식·일식등 다양/“1억엔·집·벤츠 줄테니 살아라” 유혹도/태국여성 수명 「직장알선」 미끼 체류중김정일은 철부지 주정뱅이 바람둥이였다고 그를 가까이서 접대했던 일본여성이 수기에서 폭로했다.
6일 일본에서 발매되는 주간문춘은 82년 9월에 설립된 평양국제클럽 여종업원이었던 요시무라·게이코(길촌경자·가명 30대 후반)라는 일본여성의 수기를 게재했다. 이 수기에서 요시무라는 국제클럽의 일보다는 김정일이 주최하는 파티에서 그를 접대하는 일이 주업이었다고 밝혔다.
82년 9월 북한의 초청으로 평양에 도착한 그녀가 처음 김정일을 대면한 것은 며칠후 평양에서 남서쪽 매리라는 바닷가에서 열린 심야파티였다. 밤낚시에서 돌아온 김정일이 수산위원회 부장 등 고위관료들과 함께 즐기는 파티에서 처음 김을 만난이후 평양시내의 서양식 건물,김정일의 저택 등에서 여러차례 파티에 초대받았는데 그때마다 바로 김의 곁에서 시중을 들어주었다. 파티에 나오는 술은 대개 60도 정도의 마오타이주였으며 자리는 프랑스식·일본식·중국식 등 다양했다.
김은 언제나 오른손에 영국제 담배,왼손에 술잔을 들고있어 자기손으로 음식을 먹을줄 몰랐다. 요리를 떠먹여주라는 권고에 못이겨 젓가락으로 요리를 집어 입에 가져가니 서슴없이 입을 벌려 받아먹었다.
그는 담배재를 재떨이에 떨줄도 몰랐다. 담배재가 흰 테이블 시트에 떨어지면 전기 청소기로 그것을 청소하는 젊은 여자가 따라다녔다.
60여명의 고위급인사들이 참석한 어느 파티에서 그는 교향악단을 지휘하는 치기를 부리기도 했다. 그가 지휘자옆에서 맨손으로 지휘하기 시작하면 지휘자가 지휘봉을 넘겨주고는 황공한 태도로 바라보았으며 지휘가 끝나면 요란한 기립박수가 오래도록 계속됐다. 접대가 끝나면 김은 어김없이 1백달러의 팁을 주었다. 계약기간(1개월)이 끝나 일본으로 돌아온 요시무라씨는 20여일후 재초청을 받고 두번째로 평양에 갔다. 김정일이 적집 초대한다는 것이어서 거절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조건은 역시 월 50만엔에 준비금 20만엔이었다.
두번째 방문때는 김정일 저택에서 열린 파티에 초대받았다. 유럽식 정원이 훌륭한 저택에 도착한 것은 낮이었는데 넓은 복도 곳곳에 술취해 골아떨어진 사람들이 많았다. 낮부터 과음한것 같았다. 3시간 정도 기다리니 잠자리에서 막 일어난듯 부스스한 얼굴의 김이 나타나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김의 오른쪽에는 아름다운 젊은 여자가,왼쪽에는 요시무라가 앉았다. 김은 오른손을 젊은 여자의 무릎에,왼손은 요시무라의 무릎에 올려놓고 싱글벙글했다. 요시무라가 손을 떨쳐내자 김은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호텔로비에 걸린 대형초상화의 주인공이라고 알고 있다』고 대답하자 김은 만족스런 미소를 띠며 『1억엔에 집과 벤츠를 줄테니 여기거 살지않겠느냐』고 유혹했다. 그녀는 『내 나라에서 사는 것이 제일 행복하다』고 완곡하게 거절했다.
너무 술이 취한 김은 옆테이블에 갔다가 갑자기 의자밑으로 쓰러졌다. 기분이 나빠진 모양이었다. 소동이 벌어지자 파티는 중단됐다.
이 수기에서 요시무라씨는 태국여성 몇명이 일본에 직장을 알선해 주겠다는 속임수에 걸려 평양에 체재중인 것을 보았다고 밝혔다.<동경=문창재특파원>동경=문창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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