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봉변당한 교수로 알아/시종 침착… 대기 경찰차 사양”『밀가루를 뒤집어 쓴 분이 총리라는 생각은 하지못했습니다. 아니 세상에 그럴수가 있습니까』
3일 하오 외대앞에서 정원식 총리서리를 총리공관까지 태우고간 서울3 하5301호 개인택시 운전사 김종인씨(42·서울 강동구 길동 374의8)는 하루가 지난 4일 상오에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목소리로 당시 상황을 털어놓았다.
김씨가 정총리서리를 태운곳은 외대에서 휘경역 방면으로 30m 정도 떨어진 도로변.
차가 밀려 멍하니 외대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굳게 잠긴 교문이 열리면서 머리에서 발끝까지 밀가루를 뒤집어쓴 노인이 여럿의 부축을 받으면 황급히 자신의 차에 오르더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교수 한분이 학생들에게 봉변을 당한것으로 알았습니다. 취재기자들이 총리라고 얘기했을때 정말 믿기지 않았습니다』
김씨차가 휘경역 건널목을 지나면서 경찰순찰차와 오세찬 청량리경찰서장 승용차가 나타나 차를 세웠으나 정총리는 택시로 가겠다며 옮겨타기를 사양했다.
차가 위생병원앞을 지나자 정총리서리는 그제서야 정신이 드는듯 수행원이 내미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기자들이 많이 보는 앞에서 봉변을 당해 큰 망신』이라며 『학생들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뉘어 있는데 온건파들의 만류로 이정도로 끝난게 다행』이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김씨는 삼청동으로 가는동안 정총리는 차분하게 창밖을 응시하며 수행원들이 병원으로 가자고 권유하는 것을 뿌리치고 경찰호위차량에 경광등을 끄도록 지시하는 등 봉변을 당한 사람답지않게 시종 침착한 자세를 잃지않았다고 밝혔다.
공관 현관앞에 도착하자 정총리는 김씨에게 『수고했다』며 수행원들에게 차비를 후하게 줄것을 지시했으며 김씨는 이를 사양하다 3만원을 받았다.
김씨는 『세상이 말세라는 생각이 들어 일할맛이 안나 곧바로 집으로 왔다』며 『지성인들이 모인 대학에서 배운사람들이 환갑넘은 선생님에게 그런일을 할수있느냐』고 한탄했다.
김씨는 『자식을 대학에 보내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힘든일을 해왔으나 이런 시국에 대학보내기가 겁난다』고 걱정했다.<이재렬기자>이재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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