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반인륜의 현장/송용회 사회부기자(기자의 눈)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반인륜의 현장/송용회 사회부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1.06.05 00:00
0 0

얼핏 듣기에도 흐뭇한 「재상의 마지막 강의」는 계란과 밀가루세례에 먹칠이 되고 발길질에 짓이겨지고 말았다.3일 하오 초여름의 대학 교정에서 계란 밀가루에 뒤범벅이 된채 학생들에 의해 질질 끌려다니는 정원식 국무총리서리의 모습은 우리나라와 우리나라 대학현실에 대한 비애감을 갖게 했다.

정총리서리가 지하철을 타고 외대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1시간뒤에 날아든 계란과 밀가루,욕설을 상상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짙은 감청색양복 상의를 벗고 와이셔츠 차림으로 우스갯소리를 섞어가며 강의를 하던 정총리서리는 「교육에 있어서의 동기유발」과 「학생행동관찰」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다 90분 강의를 45분만에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총학생회 간부 등 학생 50여명이 강의실 밖에서 외치는 구호소리는 『총리라도 일과시간후에 교수의 입장에서 강의하는게 문제가 있겠느냐』는 정총리서리의 순박한 생각을 한순간에 허물어 뜨리고 말았다.

당혹한 모습으로 비서관들의 호위를 받으며 교실 뒷문을 통해나온 정총리서리가 당한 수모는 더이상 되풀이하고 싶지도 않다.

학생들은 이 행동에 대해 『폭력은 잘못이지만 전교조 교사들의 생존권을 무자비하게 박탈한 주역에게 응징을 한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학생들 스스로 잘못을 인정한 폭력부분을 제외한 「응징」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지만 그들의 논리에는 명분을 위해서는 웬만한 수단쯤은 용인할 수 있다는,그들이 그들의 적을 비난할 때 지적하는 파쇼적 논리가 깔려있다.

진지하게 경청하는 수강생들 앞에서 강의하는 교수를 강제로 끌어낼 권리가 과연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과거 독재정부가 사상과 전력을 이유로 교수들을 군화발로 몰아냈다면 학생들은 군화발을 계란과 발길질이라는 수단만 바꾼채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여학생들의 울부짖음과 복도에 짓이겨진채 널려 있는 사은의 꽃다발은 갈길이 멀고도 험한 우리대학의 참담한 현실을 웅변해주고 있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