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택동 4번째 부인… 4인방 사건으로 수감/한때 권좌서 정책좌우 모 사망후 내리막길【뉴욕 로이터=연합】 고 중국국가주석 모택동의 미망인 강청(77)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타임지가 최신호에서 밝혔다.
타임지는 사인방의 우두머리였던 강이 감금되어 있던 국경교외의 저택에서 지난달만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한 것으로 믿어진다고 이름을 밝히지 않은 북경소식통들을 인용하여 보도했다.
강은 10년전 유혈문화 혁명을 교사한 혐의로 사형을 언도받았었다. 그후 참회의 기회를 주기위해 2년동안 형집행정지 처분이 내려졌으나 강은 결코 참회하지 않았다. 이어 83년 강은 종신형으로 감형됐다.
강에 대한 비난이 최고조에 달했을 무렵 강은 법정에서 『나는 모주석의 주구였다. 그가 나에게 누구를 물라하면 난 그를 물었다』고 말한 바 있다.
타임지는 후두암을 앓은것으로 알려진 강이 고통을 단축하고 싶어했을 것이라고 전하면서 강의 죽음은 천안문사태 2주년을 맞아 전전긍긍하는 북경 정부에게는 난처한 시기에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강은 비록 천안문사태와는 무관하지만 강의 사망공표는 새로운 소요사태를 야기할수도 있다고 타임지는 내다봤다.
▷강청은 누구인가◁
자살설이 나돌고 있는 고 모택동 중국주석의 네번째 부인 강청(본명 이정)은 평생을 권력에 집착하며 현대판 서태후를 꿈꾸는 파란만장의 생을 살아온 여걸. 1914년 북경 인근 산동성의 한 작은마을에서 태어난 강은 끼니를 때우기 어려워 14세때 순회극단에 여배우로 뛰어든것으로 알려졌다. 자라온 환경탓으로 반지주·반외세 사상에 물들였던 강은 주로 좌익계 악극의 히로인이 되면서 지난 37년 연안에서 모와의 운명적 만남을 가졌다. 당시 모는 세번째 부인 「허쯔엔」과 결혼한 상태였다.
그러나 신분상승과 권력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강은 임신을 빌미로 모의 넷째부인이 됐다. 당시 난처한 입장에 빠졌던 중국 공산당은 『강이 결혼후 30년간 정계에 진출치않고 강을 「미세스 모」로 부르지않는다』는 조건으로 모와의 결혼은 허락한 일화가 있을 정도로 강의 권력욕은 이미 두드려졌다.
이때 두사람의 결혼을 가장 반대했던 사람은 주은래와 등소평 등 소위 개혁세력. 이들에 대한 강의 구원은 강을 주축으로 한 보수세력과 주·등의 개혁세력간의 되풀이되는 권력투쟁으로 이어지며 중국 현대정치사에 피로 아로 새겨졌다.
대장정에 참가해 명실상부한 국모지위를 굳힌 강은 서서히 권력에 대한 편집광적인 단면을 드러냈다.
문화혁명의 와중인 69년 당 정치 국원으로 일약 도약한 강은 이후 73년 8월10 전대회를 계기로 최고의 권력핵에 자리하게 됐다.
그러나 76년 모의 사망과 함께 강의 왕조도 퇴락하고 말았다.<윤석민기자>윤석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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