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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채널­「통일추진」의 무대로/「남북공존」유엔(한국일보 월요포럼)

입력
1991.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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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소외 「한국문제」 당당한 발언권/외교가선 벌써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역 거론/환경·경협등 민족차원 공조도 가능유엔이 우리의 눈앞에 성큼 다가와 있다. 해방과 건국 6·25전쟁과 전후복구 과정에서 유엔이 우리와 맺은 숙명적 인연을 감안하면 새삼 유엔이 가까이 다가와 있음을 느끼게 된것은 오히려 아이러니일수도 있다.

창설이후 46년간을 달려온 유엔은 설립당시 유엔헌장이 세계평화를 지켜줄 「마그나 카르타」라고까지 칭송되던데 비해 몰락의 과정에서 여겨질만큼 무능과 비능률의 대명사로 휘청거려왔던게 사실.

이런 유엔이 지난번 걸프전에서 이라크에 대한 제재결의를 총의로 도출해 냄으로써 그 국제적지위를 회복,위상을 강화하는 전기를 맞고 있다.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이 우리에게 엄청난 역사적 이정표로 간주되는 것은 그동안의 「역설」을 이처럼 강화된 유엔에서 보상받을 수 있으리란 기대도 일조를 하고 있다.

▷유엔의 어제·오늘◁

45년 「세계평화를 지키는 신마그나카르타」로 비유되며 탄생한 유엔은 냉전시대의 동서 대립으로 『외계인 침입이 있을때나 합일점을 찾을 것』이라고는 조롱까지 받을 정도로 무력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그런데 유엔이 걸프전 이후 국제사회의 보안관과 협력중개자로 다시 등장,역사와 반전을 실감케하고 있다. 유엔의 위상강화는 냉전의 완전 종식과 이데올로기의 종식,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추진 등으로 형성된 새로운 국제협력시대에서 「중개자」의 필요성이 증대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화려한 변신뒤에는 60년대 「아무것도 하지못하는 거인」으로 불렸던 쓰라린 경험도 있다. 당시 비동맹국가들이 다수 등장하면서 「1국1표주의」에 의해 유엔은 제각각의 이해관계,특히 냉전하의 대립에 의해 「갈지」자 걸음을 계속해야만 했다. 이런 기류는 한동안 계속돼 월남전,중동문제,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 20세기 후반의 대표적 국제분쟁에서 속수무책,『비만 오면 접어버리는 쓸모없는 우산』이라는 비난까지 들어야 했다.

안보리가 제기능을 발휘한 것은 50년 한국전이후 이번 걸프전이 처음이다. 물론 60년 콩고사태,이집트·이스라엘전쟁(56년 73년),그리고 78년 레바논사태때 유엔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기도 했으나 분쟁해결에는 절대 역부족이었다.

유엔의 역부족은 바로 유엔의 대주주랄수 있는 미국의 고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초창기 51개국에 불과하던 회원국이 1백60개국에 달하게 됐고,이 과정은 바로 대개 사회주의 성향을 지닌 신생가입국의 세확장으로 연결됐다.

1국1표주의의 주권평등원칙 앞에 초대국이나 미니국가나 권한의 행사가 다를게 없게 된것이다. 특히 아프리카,비동맹그룹의 신생국가들은 가난의 원인을 서방선진국에 돌리면서 유엔을 대서방성토장으로 삼기도 했다.

그러나 걸프전이후 강화된 유엔의 위상은 세계가 유엔주도하의 신질서를 도출할 수 있다는 기대를 무르익혀가고 있다.

남북의 유엔 동시가입이 이러한 상황에서 실현된다는 점도 우리에게는 매우 의의있는 대목이다.

▷한국과 유엔◁

한국과 유엔과의 관계는 47년 한반도문제가 제2차 유엔총회에 상정됨으로써 시작돼 48년 정부수립,50년 한국전쟁 발발,냉전체제하의 유엔가입공방 등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오늘에까지 계속돼왔다.

소위 한국문제(Korean Question)가 미결과제의 형태로 54년부터 70년까지 계속해서 유엔총회의 자동안건이 돼야했던 씁쓸한 과거사도 한­UN관계를 들추다보면 어김없이 반추된다.

한국 독립문제가 처음 유엔에 등장한 것은 47년 제2차 유엔총회때. 당시 총회는 미국제안에 따라 유엔 임시위원단(UNTCOK)을 설치,한반도 전역의 총선거를 감시토록 했다. 그러나 이미 이때는 냉전고착화 조짐속에 미소간에 치열한 이념·체제대립이 전개되고 있던터라 UNTCOK의 입북은 거부당한다.

그래서 이 위원단의 접근이 가능한 지역,즉 남한에서의 총선거가 48년 5월10일 실시되고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탄생한다. 그해 12월12일 3차 유엔총회는 『한국정부가 한반도에서의 유일합법정부」라는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상설기관인 유엔한국위원단(UNCOK)을 만들어 한반도 통일실현방안을 모색한다.

50년 6·25전쟁시 유엔은 한국에 대해 우호를 넘어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결정을 내린다. 전쟁발발직후 안보리는 북한의 행위를 「유엔헌장상 침략·파괴행위」로 규정하는 결의안을 9대 0,기권1(유고),불참1(소련)로 채택한다. 이 결의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침략행위가 계속되자 실력행사를 할 수 있는 결의안을 통과시킨다.

이와함께 유엔통일부흥위원단(UNCURK),유엔한국재건단(UNKRA)을 창설하는데,특히 UNCURK는 매년 정기총회에 한국관련 연례보고서를 제출토록돼있어 한국문제가 총회에 자동상정케된다.

50년대 한국의 대유엔외교는 미국 등 자유진영이 다수를 점한 유엔의 세력분포를 배경으로 추진됐으나 60년대에 들어서 사회주의성향이 주조를 이루는 비동맹국가들의 수적 확대가 급격히 이루어지자 북한의 선전공세가 먹혀들기 시작했다.

유엔의석 분포가 변하면서 한국문제의 연례적인 총회상정이 득표노력 등의 외교적 소모를 가속화시키자 우리측은 이를 피하는 전략을 택해 71년 총회에서 「한국문제 토의연기안」을 통과시킨다. 이때부터 74년까지 재량상정으로 우리의 정책이 전환됐는데,이 기간중 북한측은 비동맹국가를 등에 업고 「총회공세」를 계속 전개했다. 이 기간이 우리의 대유엔외교사에서 가장 힘든때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키신저 미 국무장관의 북경 방문 등으로 데탕트시대가 열리고 비동맹국의 온건화가 두드러지면서 75년 제30차 총회를 고비로 한국문제는 더이상 유엔총회에 상정되지 않는다. 이후로는 유엔을 무대로한 남북간의 외교경쟁은 눈에 띄게 소강상태에 들어간다.

그러나 최근들어와 소련전투기의 KAL기 폭파 버마랑군의 암살테러사건(이상 83년) 그리고 87년 북한의 KAL기 폭파때 안보리에서 우리문제가 심도있게 논의되기도 했다.

▷회원국이 되면…◁

현재 옵서버의 지위인 우리가 유엔의 정회원국이 될경우 무엇이 어떻게 달리질 것인가에 대해 외무부 관계자는 『미처 실감을 못할 정도로 획기적』이라는 한마디로 설명을 대신한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정회원국의 대열에 끼지 못했기때문에 유엔무대에서 우리외교가 겪어야했던 소외와 좌절이 어떠했는가를 짐작케해주는 절실한 표현이기도 하다.

우선 유엔가입은 우리가 국제사회의 의사결정과정에 당당한 발언권과 투표권을 가지고 국제문제 해결의 주체로서 참여하게 됨을 의미한다.

유엔가입과 함께 각종의무가 부과되고,특히 연 2백만달러로 추산되는 유엔 운영분담금을 부담해야 하지만,행사할 권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동안 우리의 유엔외교가 우방회원국들을 상대로 한 「간접외교」 방식을 취해왔고,이로인해 그 실효를 기대하기 힘들었던데 비해 엄청난 외교력의 강화와 국익증진으로 이어질 것이란게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평가이다. 심지어 한국문제가 토의되는 안보리 등의 주요회의에 우리측 입장을 회원국에 「위임」 해야했던 실정에 비추어,유엔산하의 여러전문기구에 자동적으로 참여하고 각종회의에 참석할 수 있게되는 지위는 우리가 국제적 위상에 걸맞는 외교적 지위를 확보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특히 현재 교역관계 등 세계질서속에서 우리가 점하는 비중으로 볼때 안보리의 비상임이사국으로 피선될 가능성이 매우 크며,안보리의 중추적기능을 감안할때 이는 주요 국제문제 해결에 주도적 위치를 확보하게 됨을 뜻한다. 우리의 국제적 발언권이 상상할 수 없을만큼 강해질 수 있다는 얘기이다. 그동안 대북한 문제로 특히 일본 등에 「부탁」을 일삼아오던 전례를 탈피,이들 국가와 서로 「주고받는 관계」의 대등한 외교를 펼수있게 된다.

외교가에서는 벌써부터 총회의장·안보리 의장·사무총장 등의 후보국으로 한국을 꼽고 있기도 하다. 특기할것은 남북한이 정회원국으로 유엔에서 만날경우 환경·경제개발 등 국제적 이슈에 공동대처할 여지가 넓어지고 이같은 과정의 축적을 통해 남북한 협조채널은 물론 통일과정을 급속히 촉진시키게 되리란 전망이다.

이에 발맞춰 외무부는 현재 17명에 불과한 유엔대표부 규모를 30여명 수준으로 대폭 확대하고 예산배정도 크게 늘려 유엔에서의 외교공간을 최대한 활용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현지의 우리 외교관들이 피부로 느끼게 될 변화는 정회원국가 대표들이 누리고 있는 외교관의 면책특권 등 떳떳한 국제적 신분을 갖추게 된다는 것.

그동안 유엔대표부의 우리 직원들은 유엔규정에 따른 완전한 외교관의 신분을 얻지못해 뉴욕 총영사관 소속을 겸해야하는 불완전한 「이중신분」을 감수해야했다.

또한 유엔사무국에 대한 한국민의 진출도 늘어날 전망이다. 사무국에 근무하는 「국제공무원」들은 전세계국가의 분포를 고루 나타내고 있지만 국력과 유엔내 위치 등의 배경에 따라 채용되는게 관례이기 때문이다.<조재용·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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