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다호 83년 KAL기 희생자 진혼제/“결코 잊지는 말자” 억울한 넋 2백69명 위로/「사랑의 쌀」 싣고 나흘째… 내일 동포들에 전달【한바다호 선상=한기봉기자 전화】 사할린 남서쪽 찬바다에 뿌려진 꽃다발은 배가 항해하며 일으키는 하얀 물결속에 풀어지며 시야에서 멀어져갔다. 파란 바다에 빨갛고 하얀 점으로 남을때까지 꽃들은 가라앉을줄 몰랐다.
사할린 동포에게 전할 사랑의 쌀을 싣고 나흘째 항해중인 한국해양대 실습선 한바다호(3천5백톤급)에을서 2일 상오9시(한국시간 상오7시) 지난 83년 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추된 KAL007기 희생자 진혼제가 열렸다.
해양대 3년 실습생,사관(교수) 등 2백여명은 KAL기 격추해역인 모네론섬 남방 28마일 공해상(동경 1백41도6분,북위 45도45분)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2백69명의 넋을 위로했다.
영령을 위해 기도한 사랑의 쌀 나누기운동본부 민정춘목사(45)는 『더 이상 이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고 고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이 바다를 기억하자』며 『청년학생들이 울리는 진혼제가 세계만민의 가슴속에 평화와 사랑을 심어줄수 있기를 하나님께 기원한다』고 말했다.
학생대표로 바다에 헌화한 항해과 3년 남우주군(21)은 『이 기분을 결코 잊지못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미워할수만도 없겠지요』라고 말했다. 하룻밤만 지나면 친선사절로 소련땅을 밟게되는 학생들은 표현하기 힘든 감회에 젖어 있었다. 그들은 『잊지는 말자』는 말로 마음을 정리하는 것 같았다.
진혼제는 예비된 행사는 아니었다. 소련 입항을 눈앞에 두고 양국 국교수립 등을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KAL기 사건이 거론되면서 자연스럽게 진혼제가 제기됐다. 천선방문이라는 점을 들어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대다수의 의견은 태극기를 달고 소련땅에 들어가는 첫 배가 이 바다를 그냥 지나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이었다.
기도와 묵념,헌화로 10여분간 진행된 진혼제에서는 진상규명 요구나 성토,배상요구는 없었다. 그러나 이날의 진혼제는 KAL기 사건에 대한 어떠한 외교적 수사나 행사보다 더 큰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것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한소간의 불행했던 과거를 기억하며 소련땅을 밟는다는 점이었다.
한바다호는 3일 하오2시(한국시간 정오) 사할린 남단 코르사코프항에 기항,4일 사랑의 쌀을 동포들에게 전달하고 위안행사를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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