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적 노력에 역점… 제재 일부풀려 숨통/개혁파 등용싸고 갈등… 권력투쟁 조짐도오는 4일은 천안문광장의 민주화시위를 유혈진압한지 만2년. 하지만 이른바 「6·4천안문 사건」은 아직도 중국을 떠나지않는 망령으로 남아있다.
미 의회가 최혜국대우 연장을 둘러싸고 중국의 인권문제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고 있는것은 6·4사건이 남긴 유산이다.
홍콩의 새 비행장 건설문제를 놓고 중국과 영국 홍콩이 길고긴 줄다리기와 불협화음을 빚고 있는것도 6·4사건이 남긴 또하나의 흔적이다.
1일 하오3시 홍콩 센트럴 지역의 차터 가든에서는 수만명 시민이 6·4기념 집회를 갖고 완차이의 신화사 홍콩 분사까지 대규모 시위행진을 벌였다.
최근들어 북경대 구내에 전단이 뿌려지고 프랑스 미국 등지에 망명한 민주운동단체들의 기념·추모행사가 잇따르면서 6·4사건은 또 한차례 새삼스러운 기억으로 반추되고 있다.
중국이 언제쯤 6·4의 그늘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지 아직은 아무도 분명히 대답할 수 없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해 보이는 것은 6·4의 충격은 이제 거의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6·4 관련자들에 대한 처리는 걸프전에 세계의 이목이 쏠려있던 작년말부터 지난 2월사이 7백15명을 재판에 회부해 대부분 석방하고 72명에 대해서만 1∼3년형의 비교적 가벼운 처벌로 매듭을 지어 자신감을 보였다.
상해경제도보의 편집자 왕군도와 진자명 등 천안문 시위배후의 검은손(흑수)으로 지목된 2명에게 13년형을 내린것이 가장 가혹한 처벌이었다.
6·4직후 중국이 겪은 가장 큰 고통과 충격은 역시 서방세계의 경제제재 조치와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이었다.
표면상 서방세계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강경자세를 고수했지만 서방세계의 제재는 중국 당정내의 광범한 개혁지지 세력을 돕고 북경정부로 하여금 정치적 관용에 나서지 않을 수 없도록 압력을 가한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 28일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차관공여 재개발표를 끝으로 서방 각국과 세계은행을 비롯한 주요 차관기구의 대 중국경제 제재조치는 2년만에 모두 풀렸다.
작년 5월이후 외국기업의 투자가 재개되면서 중국의 경제는 작년한해 5% 성장을 기록했다.
6·4의 충격을 벗고 상처를 가리는데 커다란 몫을 한것은 지난해 중국외교의 괄목할 성과였다.
소련내부의 격동과 동유럽 공산정권의 잇단 몰락으로 정치·이데올로기면에서 더욱 고립되는 형편인데도 북경 정부는 작년 8월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이후 걸프사태가 장기화된것을 십분 활용하면서 북경아시안게임을 전후해 「외교적 부활」에 성공했다.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사태진전의 하나는 중국이 과거 접촉자체를 기피했던 나라들과 조용하면서도 확실한 접촉과 관계개선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와 무역대표부를 교환하고 조기수교를 서두르고 있는것도 그런 대표적 사례의 하나다.
전기침 외교부장이 작년 11월 워싱턴을 방문,부시 미 대통령을 만나면서 북경은 6·4후 거의 18개월에 걸친 국제고립에 종지부를 찍었다.
오로지 최혜국 대우와 인권문제를 연계시키는 미국과의 신경전이 6·4의 유산을 상징하는 마지막 이슈로 남은 셈이다.
6·4이후 1년반 가까이 극좌보수세력이 대세를 장악해오던 중국의 정국은 작년 12월말의 7중전회를 고비로 개혁노선의 재부상 조짐이 두드러 지고 있다.
실권자 등소평은 6·4직후 안정을 최우선적으로 강조하며 「향후 2년내」에는 모든 이견이나 논쟁을 덮어둘 것을 지시했었다.
그동안 계속 미루어오던 중앙위 이하 서기처·정치국·정치국 상위 등 당최고지도부를 비롯한 당·정·군의 전면적인 지도부 개편을 놓고 내년가을 전당대회(14대) 때까지 새로운 권력투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등소평은 그동안 강택민을 핵심으로 하는 후계구도 구상에 따라 당의 세력기반을 꾸준히 강화시키는 한편 치밀한 사전정비작업으로 이같은 권력투쟁에 대비해 오고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난 3월의 전인대(제7기 4차)에서 상해시장 주용기를 부총리에 승진시켜 강주체제를 구축하고 개혁파 엽선평·전기침을 각각 정협 부주석과 국무위원에 승진시켰다.
지난 27일에는 호계립(전 정치국 상무위원) 예행문(전 정치국 원·서기처 서기) 염명복(전통전 부장) 등 6·4직후 실각했던 조자양 지지자 3명을 복권시켰다.
보수파 핵심인물의 하나인 북경시 당위서기 이석명같은 사람은 이들 개혁파 트리오에 대한 갑작스러운 복권 결정직후 28일 북경시당교 간부모임에서 연설을 통해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했다.
진진,왕진 등 보수원로들은 지난 2∼3월 상해에 장기체류한 끝에 「내부강화」로 지시된 등소평의 「상해구상」중 보다 대담한 개혁을 위한 「사상의 해방」 이라는 대목에 반기를 들고있다.
이번 당내 갈등은 내년의 14대에 앞서 올가을 소집될 당중앙위 전체회의(8중전회)에서부터 표면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점에서 보수 원로들이 포진한 중앙고문위원회의 해체를 비롯해 등이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차세대 권력구도의 실현정착에는 상당한 파란이 예상된다.
이처럼 중국에는 표면상의 안정회복에도 불구하고 6·4사건의 배경과 동기가 됐던 여러문제들이 여전히 미해결인 상태로 남아있다.<홍콩=유주석특파원>홍콩=유주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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