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힘에 맞는 통일방식 찾아야”/통일지상주의·감상적 논의 경계/중도세력 육성등 여건 마련부터/북한에 대한 우월감·흡수환상 버리고 이해노력을/대담:장명수 편집국차장눈앞에 다가온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을 지켜보며 남다른 감회에 젖는 사람이 있다.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을 주장하다가 반공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르고 대학에서 두번씩 해직되어 7년을 실직자로 지내야했던 정치학자 김준희씨가 그 사람이다. 지난 2월 건국대에서 정년퇴직한 그는 현실보다 20년 앞섰던 주장으로 인해 치렀던 고난을 털어버린채 『남북의 유엔가입은 한반도의 평화유지뿐 아니라 통일을 앞당기는데도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반기면서 『살아있는 동안에 유엔 동시가입을 보게돼 기쁘다』고 말한다. 김박사를 만나 유엔가입 이후의 남북관계와 통일에 대한 전망을 들어본다.
▶선생님이 일찍부터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을 주장했던 이론적 배경은 무엇입니까.
『1970년 파리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을때 나의 논문은 「분단국가 비교연구」였는데,그 논문에서 나는 독일·베트남·한반도를 비교하면서 분단의 해결책으로 유엔 동시입을 제시했었습니다. 남북한은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정통성만을 고집하는 「법적 1국성」을 주장해왔는데,한반도에는 현실적으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두개의 부분국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적 2국성」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분단극복의 첫걸음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습니다.
나의 통일이론은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는 바탕위에서 1단계로 교류를 추진하고,2단계로 협력을 강화하고,3단계로 범한반도적 성격을 가진 정치·경제체제를 발전시켜 감으로써 휴전선을 공동화하자는 것입니다. 40여년동안 불침투성이었던 분단선을 침투성으로 만들어 허물어가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대립과 대결의 주체였던 부분국가를 교류·협력·상호의존의 주체로 발전시켜가기 위해서는 우선 상대방을 인정해야하며,그 상징적인 실현이 유엔 공동가입입니다』
▶남북한의 유엔가입은 국내정치,또 재야운동권에 어떤 영향을 주겠습니까.
『북한의 유엔가입 발표문을 읽어보면 자신의 선택은 남한의 단독가입으로 인한 폐단을 막기위한 만부득이한 것이며,동시가입이란 통일지향적이 아니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북한측 주장에 따라 움직이는 일부 운동권세력이 북한의 유엔가입으로 인해 풀이죽고 과격성을 줄이리라고 예측하기는 어렵습니다. 문제는 동시가입 자체가 아니라 동시가입 이후입니다. 남북한 대표들이 유엔안에서 협력하느냐 대결하느냐,유엔밖의 대립을 유엔안으로 가져가느냐 아니냐에 달려있습니다. 그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북한은 물론 우리도 이번 동시가입을 남북관계 개선의 큰 전환점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독일의 통일방식을 모델로 삼을수 있겠습니까.
『독일과 한반도를 비교하는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와 독일은 2차대전의 종식과 함께 동서 양진영에 의해 분단되었다는 점은 같으나 독일은 너무 강대했기 때문에 분단된 것이고,우리나라는 너무 약했기 때문에 분단됐던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도 마찬가지 입니다. 독일이 통일할수 있었던 것은 서독이 그만큼 강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서독의 막대한 경제력없이 통일이 가능했겠습니까. 그에 비하면 우리는 아직 약한나라 입니다. 능력에서도 부에서도 강대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북한이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경제적으로 파산지경에 이르렀다고 믿고 있으나,그렇다고해서 현재 남한이 북한을 흡수통합할만한 능력이 있느냐하면 어림없는 소리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발전을 과신하지 말고,북한의 현실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지 말고,통일로 북한주민을 해방시켜 행복하게 해줄수 있다는 환상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그처럼 막대한 경제력을 쏟아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동독지역의 실업자와 낙후된 기업의 재건 등으로 갈등과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또 무력으로 통일했던 베트남이 오늘 겪고있는 어려움은 길게 설명할 필요조차 없겠습니다.
베트남과 독일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통일만되면 만사가 해결될 것이라는 통일지상주의와 감상적인 통일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독일방식도 아니고 물론 베트남방식도 아닌 우리식의 통일을 추진해가야 합니다』
▶선생님의 책중에는 「통일의 그날은 꼭 온다」는 것이 있습니다. 「그날」은 언제쯤이겠습니까.
『통일은 반드시 될것이라는 확신을 가질뿐 「그날」이 언제일지 막막합니다. 한반도의 현실을 볼 때 남북한의 정치·경제·사회적 발전단계는 아직 통일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물론 북한에 더많은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우리부터라도 우리 자신의 민주화에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자기국민의 요구를 고루 충족시키지 못하고 자기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지못하는 정권이 상대방 국민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통일를 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오늘의 국제정세는 그 어느때 보다 통일에 유리해진 것이 사실이며 남북이 단결만 된다면 국제적 여건때문에 통일이 안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남북한 단합의 기반이 결여돼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가진 통일의 밑천이란 열망뿐인데,열망의 내용도 전혀 다릅니다. 북한은 사회주의적 통일을,남한은 현체제 연장으로서의 통일을 열망하는 것이지요』
▶통일의 전단계인 범한반도적 정치·경제체제란 구체적으로 어떤 체제를 말하는 것입니까.
『자유민주주의를 기초로한 민주화와 사회주의를 기초로한 민주화의 혼합형태가 좋을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남북한을 통일하는 주도세력은 남한의 민자당도 북한의 로동당도 아닌 중도파가 바림직할 것입니다. 분단상태에서는 극우·극좌가 큰몫을 하고 있으나,만일 극우나 극좌의 주도로 통일이 된다면 민족적 희생이 너무 클것입니다.
재야,학생운동권,노조,진보적 지식인 등 민주사회적인 세력들이 한데 모여 정당으로 커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관용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현재의 법테두리안에서의 사회주의 정당이 자리잡기 어렵고,그렇기 때문에 사회주의적인 세력이 지하운동 폭력운동으로 사회를 혼란시키는 것입니다. 정부는 중도세력의 육성이야말로 통일의 여건을 갖춰가는 것이란 것을 직시해야 합니다』
▶일부 대학생들의 좌경화를 보면서 어떤 통일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일부 대학생들의 좌경화는 아이로니컬하게도 우리의 멸공교육,반공교육의 산물입니다. 정보야말로 생명이고 자산인 오늘의 국제사회에서 우리는 공산주의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하고,통일교육은 과감한 개방을 기본으로 해야합니다. 우리의 초중고대학생들이 어느날 평양에 가서 북한사람들을 만났을때 전혀 놀라지않고,당황하지 않고,기죽지않고,대립하려하지 않으면서 대화를 나눌수 있는 단계까지 가르쳐야 합니다.
공산주의와 담을 쌓고 커온 젊은 학생들이 공산주의에 호기심을 갖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현상입니다. 젊은날 한때 마르크스주의자가 되더라도 간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이 사회에 나오면 대부분 그게 아니구나 깨닫게 됩니다. 그런과정을 무시한채 젊은날 한때 마르크스를 좋아했던 사람은 무조건 일생을 끝장 내려고 하니 좌경한 젊은이들의 운동이 과격해지는것 아닙니까』
▶북한의 변화,북한의 정치·경제·사회발전을 낙관하십니까.
『우리가 원하는 속도만큼은 아닐지라도 북한은 변할 것이며 또 변하고 있습니다. 북한에 다녀온 사람들의 증언이나 TV방영 등을 통해 북한의 숨막히는 개인숭배와 이해할수 없는 행태에 절망을 느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북한사람들의 타성이나 습관중에는 살기위해 순응해온 점이 많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도 살기위해서 침묵했던 시절이 있지 않습니까. 냉전체제속에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조건아래서 북한의 개방이란 어려운 과제였음을 이해하고,나름대로 그들이 변화하기를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한 때입니다』
▶선생님은 분단상황에서 수난을 겪었던 많은 사람들중의 한분입니다. 6·25를 겪은지 20년밖에 안됐던 1970년대 상황에서 자신의 주장이 너무 앞섰다고 생각지는 않습니까.
『북한의 유엔가입 결정발표를 신문에서 보던날,지난 72년 나를 취조하던 이창우 검사가 「당신의 주장은 20년후에나 실현될 것」이라고 말하던 생각이 났습니다. 내주장이 과연 너무 빨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다수설이 아닌 소수설,현실보다 앞선 이론을 더이상 무시하거나 탄압해서는 안됩니다. 자연과학에서는 앞선 이론을 안타깝게 기다리면서 사회과학분야에서는 앞선 이론을 용납하지 않는다며 그 사회가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며 다양해질수 있겠습니까』
▶정년퇴직하셨는데 앞으로 어떤일을 하실 계획입니까.
『북한을 좀더 공부하기 위해 고려연방제 연구를 위한 북한견학을 학자들 몇명이 통일원에 신청해놓은 상태입니다. 앞에서 말한대로 중도세력의 육성에 관심을 갖고 민주사회주의 운동에도 참여할 생각입니다』
○약력
▲1925년 충남 서산에서 출생
▲전주사범·경성사범대학·일본 동북대 법학과 졸업. 59년∼70년 파리대학유학 정치학박사학위 받음
▲53년∼58년 한국은행근무
▲72년∼74년,76년∼80년,84년∼91년 건국대교수
▲72년 흥사단 강연에서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을 주장하여 반공법 위반으로 입건,징역 1년6월·자격정지 1년6월·집행유예 3년 선고받음(74년1월)
▲74년 건국대 교수직에서 해직,76년 복직,80년 해직,84년 복직을 거듭
▲저서 「통일의 그날은 꼭 온다」(89년 한백출판사간),역서 모리스·듀벨제의 「정치란 무엇인가」 「서구의 두얼굴」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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