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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서 반입 해강 김규진화백 유작 지상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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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서 반입 해강 김규진화백 유작 지상공개

입력
1991.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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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적 이상향 표현… 호연지기 생동/큰아들 청강 김영기화백이 말하는 선친/“작명하라고 남겨둔것 같다” 감격/중국 남북화의 절충화법 돋보여서울 강남구 청담동 63갤러리에서 팔순을 기념하는 「김청강 한국화전」을 열고 있는 해강 김규진의 큰아들 김영기 화백은 78년만에 선친의 작품을 마주대한 기쁨을 글로 적어 보내왔다.

김영기 화백은 『작품의 소재인 왕대 매화 영지버섯 학 괴석을 토대로 작품이름을 「세한오우도」라고 지었다』며 『부친께서 아마도 자식인 나에게 이름을 지으라고 남겨두신것 같다』고 기쁨을 말했다. 다음은 김영기 화백의 기고문이다.

「이 작품은 78년전 부친이 46세되던 해에 그린 대작이다. 작품의 왼쪽끝에 「시재 계숙 국추 기망 동해어인 해강김규진」이라고 써서 낙관했는데 역서 계숙은 1913년,국추는 국화피는 중추가절,기망은 16일을 의미하니 1913년 추석 다음날 완성한 것을 알수 있다.

○괴석 주요작품 소재

매화는 홍매와 백매의 2종을 쳤으니,이 작품이 북에서 남으로 건너온 과정으로 볼때 남북의 화합을 의미하며 한마리의 청학은 태평성대를,3마리의 백학은 고고함과 평화를 상징한다. 특히 괴석은 부친의 주요한 작품소재인데 이 작품속의 구멍 뚫린 괴석은 일명 대호석이라는 귀중한 수석으로 양자강 하류에서만 산출된다.

○한국최초 사진관도

작품속의 오우(왕대 매화 학 영지버섯 괴석)는 6폭 대형화면에 적절히 구성,배치돼있으며 중국 남북화의 절충화법을 사용했는데 선친 특유의 대륙적 화풍이 가득하다. 작품의 전체적인 이미지는 유교적 이상향을 상징하고 있으며 인간 생활에 있어 어떤 고난과 시련이 닥쳐와도 굽히지 말고 의연히 살아가자는 의미도 포함된다.

선친이 이 작품을 제작한 1913년은 내가 3살때로 이해에 한국최초의 화랑인 「고금서화관」을 열었다. 선친은 일본에 볼모로 잡혀간 제자 영친왕을 만나러 자주 일본을 내왕했으며 처음 일본에 건너가던 1907년 일본서 사진기술을 배워 우리나라 최초로 소공동(당시 석정동 96번지)에 사진관을 개업했다. 1920년에는 창덕궁 왕실의 특명으로 금강산을 답사,외국사신을 접견하던중 창덕궁 희정당에 대형벽화 「금강산 만물초승경도」와 「해금강총석정절경도」를 그렸다.

◎북서 브라질교포 김모씨에게 선물한것/화상 김희용씨,중서 조우… 설득끝 기증/입수경위

해강 김규진 화백의 대형 화조도 「세한 오우도」는 북한에서 한국으로 오기까지의 과정도 극적이지만,한말 최고의 화가이면서도 소품 이외에는 남아있는 작품이 드물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던 해강의 작품세계가 재평가될수 있는데 큰 기여를 할것으로 미술계는 보고 있다.

이 작품을 브라질교포 김모씨로부터 홍콩에서 기증받은 김희용씨(가야화랑 대표)는 『브라질교포 김모씨의 사심없는 도움으로 자칫 잘못하면 해외로 나갈뻔했던 귀중한 문화유산이 한국으로 올수있게돼 기쁘다』며 그에게 감사했다.

김희용씨가 이 작품을 발견한 것은 지난 3월3일 북경공항이었다. 중국 연변지역을 방문하고 북경공항에서 홍콩행 비행기를 기다리던 김씨는 때맞춰 북한에서온 조선민항기에서 내려 역시 홍콩행 비행기를 타려던 브라질 교포 김씨를 보고 호기심을 느껴 얘기를 건넸다. 이국땅에서 동포를 만난 두사람은 반갑게 얘기를 나누었고 이 과정에서 브라질교포 김씨가 북한에서 선물로 받은 그림얘기를 꺼냈다.

그러면서 그는 김희용씨에게 『해강 김규진이 어떤 화가냐』고 물었다. 해강의 이름을 듣고 깜짝 놀란 김희용씨는 화랑을 경영하는 화상의 본능으로 잠시 대답을 망설이다 해강 김규진이 뛰어난 화가이며 그의 작품은 아주 귀하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홍콩에 도착한뒤 브라질 교포와 같은 호텔에 투숙한 김씨는 그의 방으로 가서 화조도를 펴놓고 살펴보았다.

화상으로서 갖고 싶다는 본능과 함께 이 작품이 절대로 해외로 나가서는 안된다는 일종의 애국심으로 브라질교포 설득에 나섰다. 브라질뿐만 아니라 홍콩과 런던 등 세계 여러곳에 사업체를 둔 브라질교포는 솔직하게 그림을 평가해준 김희용씨의 태도와 합리적인 설득에 감동,그림을 건네주었다.<이기창기자>

◎해강은 누구인가/중국서 10년 수학… 묵죽·난화의 대가/창덕궁 「금강산 만물초승경도」 남겨

해강 김규진은 1868년(고종 5년) 평남에서 태어나 18세때 그림수업의 열정을 안고 단신으로 중국 북경으로 건너갔다. 중국에서 10여년간 그림공부를 한 그는 29세때 귀국,본격적인 작품활동에 들어갔으며 1896년 서울로 진출하기 직전 평양에서 「조선국평양성일면도」를 그렸다. 서울로 온 그는 능통한 중국어실력과 특출한 서법으로 영친왕의 서사로 발탁됐다.

해강은 왕세자의 스승이었던 관계로 작품을 마음대로 거래할수가 없어 대작을 그리기 보다는 대나 난초 등을 쳐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그 때문에 화가 김규진은 통칭 사군자 범위의 문인화가라는 인식이 굳어졌다는 것이 국내화단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그의 묵죽과 묵란은 풍부한 생동감과 필치로 다른 누구에게서도 볼수없는 독자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년대 김규진은 초기선전(조선미술전람회)의 서와 사군자부 심사위원을 역임했으며 그가 52세때 창덕궁 희정당 동서양쪽벽에 금강산 만물상과 총석정을 소재로 그린 견본채색의 실경산수 「금강산만물초승경도」와 「해금강총석정절경도」는 부드럽고 명확한 선을 구사한 북종화법의 걸작이자 해강 최대의 대작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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