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리스본서 정부·반군 휴전 공식조인/공산잔재 청산·민주화등 앞길 난제많아지난 75년이래 미소 두 초강대국의 대리전 양상을 띠며 16년간 계속돼온 앙골라 내전이 5월31일 종식됨으로써 내전으로 얼룩져온 아프리카에도 새로운 데탕트시대가 열리게 됐다.
앙골라 좌익정부의 호세·에두아르도·도스·산토스 대통령과 우익반군 앙골라 완전독립동맹(UNITA)의 지도자 호나스·사빔비는 이날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휴전 ▲정부군과 반군의 축소통합 ▲17개월이내 자유총선실시 등을 내용으로 한 평화협정에 조인했다. 이로써 30여만명의 사망자를 낸 내전이 공식적으로 종식됐다.
이날 조인식에는 협상을 중재한 포르투갈 정부관계자와 그동안 앙골라정부와 UNITA를 각각 지원해온 소련의 알렉산데르·베스메르트니흐 외무장관과 미국의 제임스·베이커 국무장관 및 남아프리카의 지도자들이 참석해 이번협정 조인이 갖는 상징적 의미를 실감케 했다.
포르투갈의 중재로 지난해 4월부터 시작된 앙골라 평화협상은 지난해 6월 양측이 전면적인 휴전에 합의,한때 내전종식에 대한 기대를 높이기도 했으나 곧 내전이 재발해 교착상태에 빠져있었다.
이같은 협상과정에 돌파구가 마련된 것은 그동안 앙골라정부와 UNITA를 각각 지원해온 소련과 미국이 내전종식 압력을 강화하고 이에따라 지난 4월 정부와 반군측이 직접 협상을 개최키로 합의하면서 부터였다.
양측은 지난달 1일 평화협정에 가조인했으며 15일부터는 임시휴전이 발효돼 사실상 내전이 끝났다.
앙골라내전이 시작된 것은 지난 75년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할 당시 포르투갈의 식민통치에 대한 무장독립투쟁을 벌여온 앙골라인민해방운동(MPLA)과 앙골라해방민족전선(FNLA) 및 UNITA 등 민족독립운동 세력들이 참여한 과도정부가 파벌간의 주도권 쟁탈로 깨지면서 부터였다.
이후 소련의 지원을 받는 MPLA는 이해 11월 루안다에 독립정부를 수립했으나 FNLA와 UNITA는 각각 북부지역과 남부지역을 장악한채 친소 MPLA정권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을 개시함으로써 내전이 발발하게 됐다.
그러나 내전초기 독립운동세력들간의 권력투쟁 성격을 띠었던 앙골라내전은 곧이어 미국이 『MPLA의 손쉬운 승리를 저지하기 위해』 FNLA와 UNITA에 연간 6천만달러의 자금과 무기를 공급하고 남아공정부가 UNITA를 지원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한데 이어 소련을 등에 업은 쿠바도 MPLA를 돕기위해 군대를 파병함으로써 미소의 대리전쟁으로 변모해갔다.
앙골라는 지하자원과 임산자원이 풍부한 아프리카의 자원보고이며 대서양과 인도양,페르시아만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기 때문이었다.
「아프리카의 베트남」이라 불릴만큼 악회되던 앙골라내전이 진정국면으로 돌아선 것은 내전장기화의 무의미성에 대한 당사자들의 자각과 미소간의 신데탕트무드를 배경으로 88년5월 미소 정상이 앙골라문제의 아프간식 해결에 합의한 것이 계기가 됐다.
같은해 12월 앙골라,쿠바 남아공이 ▲쿠바군의 단계적 철수 ▲UNITA에 대한 남아공의 지원중단 ▲나미비아의 독립을 연계시킨 서남아프리카 평화조약에 합의하면서 앙골라내전은 평화적 해결의 실마리를 잡았다.
미소의 대결로 가속화된 내전이 양국간의 화해로 끝나게 된 것이다.
내전종식에도 불구하고 앙골라의 앞날에는 공산통치의 잔재를 청산하는 민주화작업과 종족갈등,2백60만명에 달하는 기아인구,예상되는 정치적 혼란 등의 산적한 난제들이 가로놓여 있다.
그러나 앙골라내전 종식을 계기로 식민통치에서 해방된이후 줄곧 내전에 시달려온 인근 국가들에도 분쟁의 평화적 해결전망이 한층 밝아졌다.<남경욱기자>남경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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