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란 유독 비밀의 장막과 비실명성을 좋아하게 마련이다. 스위스가 세계적으로 혹독·부패한 독재자나 정상배,마약·불법거래 등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모은 부정축재자의 천국이 되어온 것도 그 같은 돈의 비실명성 선호때문이었다. 스위스은행의 오명은 어떤 돈이건 가릴것없이 무기명으로 예탁받아 비밀 구좌를 터주고 철저히 그 비밀을 지켜온 전통탓인데,이제 그 비밀구좌의 마지막 보루마저 사라지게 되었다는 소식이다.◆스위스가 국제적 압력과 「더러운 돈」의 홍수로 더럽혀진 나라체면을 살리기 위해 오는 6월30일이후 비실명의 비밀구좌를 더 이상 허용치 않기로 정한 것이다. 또한 경과 규정으로 현재 3만여개에 이르는 굵직한 스위스은행 비밀구좌의 예금주들도 오는 92년 9월말까지 실명을 밝히거나 아니면 비밀구좌를 없애도록 했다는 소식이다. ◆스위스은행의 이같은 움직임은 지난 86년 필리핀과 아이티의 독재자 마르코스와 뒤발리에의 비밀구좌 예금을 동결하면서 표면화,작년에도 이라크의 예탁자산을 동결하고 더러운 돈의 세탁(합법화위장) 과정을 불법화한 조치가 뒤따랐었다. 불법자산의 도피처가 되어온 스위스은행의 이같은 실명화 용단은 국제적인 보복압력과 나라체면 유지 뿐아니라 실명화이후에도 예금고유지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현실적 판단도 함께 깔려있다고 한다. ◆민주화와 함께 각계에서 평등욕구마저 한꺼번에 분출,소용돌이치는 우리 사회이다. 6공초기 정부가 약속했던 실명제의 철회를 높고 시비가 끊이지않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스위스은행들마저 드디어 실명화 용단을 내렸다는 소식은 퍽 시사해주는 바가 많은것 같다. 나라안은 물론이고 국제간의 은행거래에서도 이제 비실명의 비밀구좌시대는 종막을 고하는 시점에 이른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제담당부총리는 며칠전 어느 조찬회에서 국내에서의 실명제 실시의향을 질문받고 『금융실명제는 전반적인 경제운용에 미치는 충격을 고려해 당초의 유보방침을 변경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예상되는 충격도 클것이다. 하지만 비실명에 따른 원성과 나라체면도 두루 생각해야 하지않을까 생각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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