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희 의원께.학자총리가 물러난 자리에 다시 학자총리가 들어선다고 합니다. 굳이 따지자면 정치학총리 다음의 교육학 총리라는 차이는 있겠습니다만,학계에 몸을 담아왔던 두 총리가,관계에 들어와서는 모두 실무총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흥미롭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가 바로 사학병장(벼슬과 학문이 아울러 뛰어남) 인가하는 생각도 듭니다만,근래 정부인사의 한 특징이 학자등용인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특히 6공 들어서는 역대총리와 부총리를 비롯한 각료중에 학자·교수 출신이 많습니다. 우리 국군이 중졸자도 가기 어려운 고학력군대인 것처럼,6공 역대내각 역시 대단한 고학력 내각임을 자랑할만 합니다. 게다가 정계로 곧장 진출한 학자·교수 출신 또한 적지 않습니다. 지식인 출신으로 4선의 정치경력을 쌓아왔고,학계와의 교분이 넓은 남의원은,이같은 학자·교수,또는 지식인의 정치동원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하필 남의원 앞에 이런 화제를 꺼내는 것은,「낙관적인 정치평론가」 남의원이 쓴 글평론집 『정치인을 위한 변명』(84) 첫머리에 실린 「정치속의 지식인」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에서 남의원은 지식인의 정치참여는 「단기간 봉사」가 이상적이고,그 연후에는 원래 제자리로 돌아갈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교수라면,관직을 마치고 강단으로 복귀하는 것이 그런 경우에 해당되겠습니다만,『우리 정치가 더욱 성숙해지고 지식인들도 진짜가 되어,그런 왕래가… 그렇게 어렵지않은 시대가 오기를 바란다』는 것이 그 글의 취지였습니다.
남의원이 말한 「그런왕래」는 분명 정치현장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수혈하고,대학에 생생한 경험을 제공함으로써,정치와 학문을 모두 살찌울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런 정·학관계가 미국에서 잘 이루어지고 있음도 잘알려져 있습니다. 학칙이 교수휴직기간 테두리안에서 정부를 위해서 「단기간 봉사」하고 강단으로 복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학자등용이 미국보다 많은 우리 형편은 어떻습니까. 남의원의 「그런 왕래」는 예외중의 예외로나 볼수가 있을 뿐입니다. 한번 정·관계에 발을 들여 놓았던 학자·교수는 「어용」으로 낙인이 찍히고,그들의 지식과 경험을 살릴길이 막혀 버립니다. 그 교수·학자가 본디 해바라기라든가,처음부터 전신을 생각하고 교단을 떠났다면 걱정할 것이 없겠습니다만,간청에 못이겨 국가·사회에 이바지한다고 나선 경우에도,「직업으로서의 학문」과 「직업으로서의 정치」 사이에서 메말라 버리는 꼴이 되기는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이런 형편에서의 학자등용은,요즘처럼 그 임용기간이 짧아서 몇10년 온축을 다쏟을 기회마저 미흡한 때에는 더욱,너무나 낭비적인데가 있는것 같습니다. 또 이래가지고야 어느정도나 학문·지식의 동원과 활용이 가능하겠습니까. 아무래도 성숙되지못한 정치가 학자마저 소모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순수학문이란 차원에서,남의원이 말하는 「그런 왕래」를 마다할 기풍이 대학에 있는것도 당연할 것입니다. 하지만,이것이 유교사회 사림의 전통을 이은 것이라고 한다면,사학병장이 유교적 선비상의 한 이상인것 또한 틀림이 없을줄 압니다. 이 후자의 전형을 퇴계 율곡의 행적에서 볼수가 있습니다. 이런 정학통합의 전통이 근래의 학자등용과 어떻게 연관이 될는지는 알수가 었습니다만,정권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건,정·관계의 인물난을 메우기 위한 것이건,학자등용이 하나의 추세라면,남의원이 말한 「그런 왕래」의 길도 이제는 제대로 트여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학자를 등용하는 쪽의 태세나,학자를 배출하는 쪽의 태세가 함께 달라져야겠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얼마전 회식자리에서 흐뭇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떤 교수가 대학으로 복귀해 보니,연구실이 말끔히 정돈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그의 복귀를 반기며,자진해서 연구실을 청소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이름난 자연과학자요,전공분야 장관직을 맡았던 터라,사회과학자의 대학복귀와는 경우가 달랐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퍽 듣기에 좋았습니다.
그런데,그 자리를 함께했던 한 철학교수가 이런 말을 해서,좀더 생각할 꼬투리를 만들었습니다. 그의 말인 즉,서울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중에 정년퇴임하는 교수가 나오기 전에는 우리나라 정치가 잘될수가 없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반어조가 섞인 그 말의 한가지 뜻은 정치학과 교수들의 「외유」가 너무 많음을 나무라는데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국무총리의 출신을 생각해서는 이 해석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하지만,다른 한편으로는 「외유」에서 교수들이 복귀할수 있고,그래서 정치이론이 성숙될수가 있어야,정치도 제대로 성숙되리란 뜻의 해석도 가능할것 같았습니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의 집안사정이 어떤지를 잘모를뿐 아니라,그 과에 정년퇴직 교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확실하게 짚어보지는 못했습니다만,앞으로 일의 풀림새가 이 후자의 해석대로이기를 기대하고 싶습니다. 이런 기대에 대한,나보다는 정치에 밝을 「낙관적인 정치평론가」의 요즘 생각은 어떤 것인지가,글머리에 제기한 물음의 뜻입니다. 거기에는,요즘같은 변혁기,또는 정치혼란기일수록 지식인의 참여가 절실한데,지식인을 제대로 동원할 방도가 무엇이겠느냐는 물음이 곁들여져 있습니다.
한 나라의 총리를 보내고 맞으며,새 총리의 취임을 축하하고 그의 경륜을 기대하는 말을 하기에 앞서,이렇게 궁상맞은 말을 한다는 것이 격에도 안맞고,좀 딱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긴 새 총리의 새 내각 구성은 며칠뒤가 될모양이라,그때가서 새 총리에 대한 요망을 말할 기회가 따로 있겠습니다만,학자총리를 보내고 맞는 말이 다음같을 수 있었으면,얼마나 좋겠습니까.
『수고했습니다. 중직의 경험을 살려 학문세계에 새로운 경지를 열수 있기를 빕니다』
『힘껏 경륜을 펴십시오. 그 연후 언제건 강단에서 다시 뵙겠습니다』<상임고문·논설위원>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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